'우리는 묻습니다.' 대구에서 문화 관련 일을 하는 한 젊은이의 전자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곧장 의문을 던졌다. '왜 대구를 보는 눈빛이 설레지 않는지? 오래도록 늘 새로움과 놀라움을 모아낸 곳인데도 말입니다.' 또 물었다.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대구는 갈 곳 없고, 볼 것 없고, 놀 데 없는 3무(無)의 도시가 되었을까요? 청년들은 왜 대구의 내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른들은 왜 과거의 대구에만 머물러 있을까요?'
그는 대구에서 공부하고 서울의 대그룹에서 일했다. 대구가 좋아 그만두고 눌러앉아 대구를 공부했다. 학창시절, 입시로 대구를 알 기회가 없었다. 자라고 대부분 시간을 보낸 대구가 궁금했다. 대구의 어제와 오늘을 책으로, 발품으로 익혔다.
그래서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화해와 용서를 주저하지 않은' 대구를 알았다. 대구가 '원래 새로움으로 늘 앞서 있었고, 한번 시작한 일은 놀라움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렇게 '겁나게' 좋은 대구가 '억수로' 괜찮은 포용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학문하듯, 연구하듯, 의미 쌓기에만 몰두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랬다. 대구가 처음부터 이렇지 않았다. 청년들이 내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른들이 과거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구는 '3무' 도시가 됐고 청년들이 떠났고 어른들은 남았다. 분명 대구는 한때 젊은이 도시였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굵직한 독립항쟁 의거에는 어김없이 젊은 청년들이 피를 뿌렸고 희생했다. 광복 이후 민주화 항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치가 대구에 이상한 색을 입혔다. 오로지 한가지 색으로만 말이다. 벌써 30년 세월이다. 대구는 한 가지 색만 남았다. 다른 색은 포용하지 않았다. 최근 야당의 한 정치인이 대구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한 것처럼 흘러간 사람만 대구색을 쫓아 넘볼 뿐이다. 대구의 청년 행사에 돈을 지원한 탓인지 단체장이 무대를 누비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친 일도 있었다. 정치인, 공직자가 이런 수준이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그는 이렇게 전자 편지를 끝맺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새로움과 놀라움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끊임없이 우리는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을 것입니다.' 답은 청년이다. 지난 100년의 근대 대구역사가 분명히 검증한 답이다. 청년 없는 대구, 어찌 설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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