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교동시장 부근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단다. 한때 양키시장으로도 불려진 교동시장은 어르신들의 아지트로만 알고 있었다. 무풍지대였던 이곳도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벼르고 별러서 현장답사를 했다. 스마트폰으로 미리 몇 곳을 알아두었다.
교동시장에서 대구시청으로 가는 길, 인도에서 '자판기 문(門)'을 찾았다.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 그대로다. 벽에 붙박이 자판기를 설치한 듯했다. 청춘들이 그 앞에서 재미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개성 작렬이다. 자판기는 술집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맥주와 피자를 파는 가게라는 콘셉트(자판기에는 맥주와 피자 모형이 있다)를 보여주기도 한다. 자판기를 밀고 들어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술집에는 간판이 따로 없다. 인근에 새로 생겨난 가게의 문들도 저마다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문에 사활을 건 것 같다.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 시공을 넘나드는 문들이 우리의 시선을 가두고 있다.
대구약령시에는 예쁜 문으로 소문난 가게가 있다. '다방'을 표방하고 있는 카페다. 이 집의 노란색 문은 사진촬영 명소다. 문 앞에 서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한 사진 공유 SNS에는 이 카페의 사진이 수천 장에 이른다. 문 하나 잘 만들고 나니(물론 디저트와 커피가 맛있다는 소문도 있다) 홍보가 저절로 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충성고객을 자처하고 있다. 이들은 사진을 찍어 동네방네 알린다. 시급 많은 아르바이트가 아닌데도….
중구 동산동에 있는 한옥카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판이 없다. 상호도 가공식품 제조일자처럼 깨알같이 표시돼 있다. 세월을 품은 나무 대문이 손님을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광희동의 한 카페도 특이한 문으로 유명하다. 과일가게 안에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페가 '짜잔' 하고 나타난다.
간판이 내려오고, 문(門)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즈음 가게들은 간판을 달지 않거나 아주 작은 것을 달 뿐이다. 상호나 전화번호를 찾겠다면 '아재'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문의 가치가 격상하고 있다. 문이 인테리어의 중심에 섰다. 문은 원래 건물과 그 내부 방 등의 출입구에 붙여지는 이름. 문은 들어가고 나오기 위해 열고 닫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문은 일상적 기능과 효용을 넘어섰다. 문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문은 형이상학적으로는 가게의 '정체성'이며, 형이하학적으로는 '포토존'을 의미한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