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사업이 보상 문제로 주민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금호워터폴리스 산업단지 개발사업, 영천 문외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비롯해 안심뉴타운 도시개발사업, 도남 공공주택지구사업 등 거의 모든 사업에서 '보상 협의'라는 난관을 넘지 못해 곳곳에서 주민과 충돌하고 있다.
◆"현 시세대로 보상하라"
16일 오전 대구시청사 앞. 대구 북구 금호워터폴리스 통합대책위원회 주민 60여 명이 제5차 집회를 열고 금호워터폴리스 산업단지 개발에 따른 공용 수용에 대해 정당한 손실 보상을 요구했다. 집회에서 일부 주민은 권영진 대구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 진입을 시도해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주민과 대구시 간 감정의 골은 한층 더 깊어졌다. 앞서 12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대구경북본부(이하 LH) 앞에서 영천 문외지구 주민 30여 명이 집회를 열고 납득할 수 없는 보상금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현 시세와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으로는 이주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남동헌 금호워터폴리스 통합대책위원장은 "공익사업이 진정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이라면 피수용자에게 강제 수용과 다를 바 없는 보상금을 지급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갈 데까지 가는 보상 갈등
보상 갈등으로 인한 수용재결 신청은 크게 늘었다. 22일 대구시에 따르면 주민과의 보상 협의가 무산돼 대구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 수용재결을 신청한 토지는 2013년 166필지에서 2017년 698필지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지장물 역시 153건에서 453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재결 금액으로 보면 601억원에서 1천373억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더욱이 지방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에 불복해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또다시 이의신청을 하고, 최후 수단으로 행정소송까지 가는 경우도 잦다.
이렇듯 '갈 데까지 가는' 비정상적 보상체계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해 법률사무소 등은 지역 토지보상시장에 뛰어들어 주민에게 보상금을 더 받아주겠다며 '기획 소송'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증액금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조건으로 수용재결부터 행정소송까지 주민을 대신해 사업시행자를 상대한다. 지난 2011년 대구국가산업단지 보상 과정에서도 법률사무소, 로펌 등 174명이 기획 소송에 참가해 증액금 49억원 중 5% 이상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동근 도남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올해 LH가 도남지구 주민에게 2006년 표준지 공시지가로 보상을 진행했는데 관련 지식이 전무한 주민들이 대응할 수단이 별로 없다"며 "증액금 15%를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법률사무소 도움을 받고 있으며 행정소송도 불사할 예정"이라고 했다.
◆보상금이 차이가 나는 이유
주민들은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점'을 문제 삼는다. 공익사업법에 따르면 사업인정 고시일에서 가장 가까운 시점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하게 돼 있다. 사업인정 고시일로부터 수년이 지난 뒤 보상에 들어가더라도 '공익사업이 시행됨을 최초로 알린 시점'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산정된다. 이른바 '개발이익 배제논리'다. 익명을 요구한 감정평가사는 "사업시행자가 일단 사업시행 인가부터 받아놓고 뒤늦게 재원 마련에 나서면서 보상계획 공고가 늦은 경우가 많다"며 "그 사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업지구 내 토지 소유자는 개발이익에서 배제되는 반면 사업지구 인근 토지 소유자가 개발이익을 차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사업시행자는 지가변동률, 생산자물가 상승률, 주변 실제 거래사례 등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하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믿고 기다리다가 제값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장동기 문외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비상경영체제로 문외지구 사업을 장기간 보류한 LH는 2015년 보상에 착수하면서 2009년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금을 산정했다"며 "그 사이 치솟은 인근 시세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을 손에 쥔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해결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 의식은 크게 확산됐지만 행정 관행과 토지수용법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상 문제로 주민과 행정 당국의 마찰이 잦은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이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 제한을 과거와 달리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게 근본적 이유라는 것이다. 김태운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재산권에 대한 의식 수준 역시 크게 신장됐다"며 "하지만 법대로만 보상 협의를 진행하는 행정 관행과 그 기반이 되는 공익사업법 등의 토지수용법제는 민주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갈등이 빈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나 사업시행자 중심으로 보상을 진행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공익과 기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민주적, 주민참여적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발이익의 비형평성에 따라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사회적 정의에 합당하지 않다"며 "공익사업 시행으로 큰 불로소득 이익을 얻게 된 인근 토지 소유자부터 거래세를 중과하는 등 그 이익을 일부 환수해 수용 당사자를 위한 보상 재원을 늘리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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