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섬뜩한 제목, 호러물? 시한부 소녀, 로맨스!

호러 같은 제목 때문에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고등학생들의 사랑과 인연을 그리는 로맨스 영화다. 스미노 요루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성인으로 등장하는 오구리 순과 키타가와 케이코 등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동명의 소설이 만화로 옮겨졌다가 다시 영화로 재탄생했는데, 소설에서 시작하여 만화를 거쳐 영화가 되는, 일본의 일반적인 스토리텔링 콘텐츠 유통 방식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일본 로맨스 영화 특유의 벚꽃 같은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감미로운 음악과 달콤한 색깔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제목이 가진 의미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소녀가 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주문이다. 오래전부터 일본 사람들은 아픈 부위를 낫게 하려고 동물의 같은 신체 부위를 먹으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것은 아픈 소녀가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드러내는 문장이다.

우연히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학생 사쿠라 (하마베 미나미)의 투병일기를 주운 소년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는 그 일로 사쿠라의 비밀을 알게 되고, 부쩍 그녀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예상치 못한 아픈 사건으로 이별한다. 12년이 지난 지금, 성인이 되어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하루키(오구리 순)는 도서관에서 사쿠라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성인이 된 주인공이 12년 전 추억을 되돌아보는 플롯은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1995)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구조를 떠올리게 하고, 천진한 고등학생들이 삶과 죽음을 둘러싼 우연한 사건들 때문에 고통받는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2016)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시간차를 두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비밀이 풀리면서 감동을 끌어내는 전형적인 일본 로맨스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다. 또한 남다른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자신을 알아나가며, 추억과 사랑이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의 장르 규칙을 충실히 따른다. 12년 차를 두고 한 인물을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하면서, 과거와 현재, 두 시간 축을 교차하여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그러나 '러브레터'나 '너의 이름은.'을 볼 때와 같은 놀라움과 감동을 끌어내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일본 청춘영화의 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전후 시대인 1950년대에 놀라운 철학적 깊이와 형식으로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주었던 일본 영화가 전성기를 지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최근 그 활력을 많이 잃고 말았다. 애니메이션이 주도하는 일본 영화 시장에서 극영화를 찾는 관객은 노인층뿐이라는 자조 어린 평가 속에서, 일본 영화는 옛 추억을 일깨우는 시대극이나 잔잔한 감동을 노리는 가족 드라마, 혹은 소시민 코미디 정도로 위축되어 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만큼이나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깨닫게 되는 자아 발견의 순간이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 정도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매순간을 소중하게 만들고자 하는 주인공의 낙관적인 태도,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며 초라한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보이게 한다. 현재 10대들의 데이트 방식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영화 전체를 하루키와 사쿠라가 끌어가며,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중하는 방식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외톨이 소년과 명랑한 소녀의 극적인 대비는 10대 로맨스 특유의 풋풋한 감수성을 강화시킨다. 1970년대 임예진, 이덕화 주연의 '진짜진짜' 시리즈를 좋아했던 성인 관객이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청소년 관객에게는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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