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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과나무 유감

지난 토요일 청송으로 가을 여행을 했다. 김주영 객주문학관과 달기약수터를 거쳐 노귀(奴歸)재를 거쳐 영천 자천교회를 탐방했다. 전 여정이 거대한 한 폭의 동양화였다. 멀고 가까운 산천과 들판이 울긋불긋 오색으로 찬란히 물들었거나 황금 물결로 가득했다. 일상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어서 즐거웠다.

부부 동반이 많았지만, 나는 혼자 참석한 후배와 동석하면서 그간의 정을 나누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제법 외진 지방도로에 접어들자 이곳저곳에서 노인들이 한가로이 제철의 가을걷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쇠기둥에 의지한 사과나무들이 빨간 사과들을 안쓰럽게 주렁주렁 매단 것이 못내 불안해 보여 불편했다. 아직 여리고 어리게만 보이는 어미가 억지로 새끼를 업고, 안고, 끼고, 이고 힘겹게 버티는 것만 같아 안타까움과 연민이 일어났다.

좁디좁은 철망 안에서 인간이 원하는 달걀만 밤낮없이 생산하는 양계장 닭을 생각나게 하는 사과나무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사과 밭마다 천편일률적으로 사방 1m도 안 되는 간격으로 심겨진 나무는 작고 왜소한 가지에 자식 같은 사과들을 과하게 달고 있었다.

내 고향 경산은 일찍이 사과 농사의 주산지였다. 금호강변 사토질의 거대한 하천부지는 대부분이 과수원이었다. 가시 울타리의 과수원을 지나면서 학교에 다녔던 나로선 사과나무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알고 있다. 당시의 사과나무는 제대로 대접을 받은 것 같다. 적어도 사과나무 한 그루는 최소한 8㎡(2.5평) 이상의 정방형 땅을 독차지했다. 20년 후 성목(成木)이 되었을 때 이웃한 나무와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사람이 인정해 준 것이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동요는 내가 봤던 과수원 그림을 형상화하기도 하지만, 사과나무를 생명체로 인정하여 그것이 생산한 과일을 인간이 공유하는 예의와 염치가 내재했다는 느낌이 든다.

불편해진 마음으로 자천교회에 도착했다. 1903년에 세워진 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재로서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교인들의 예배는 지금도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예배당 중간에 나무 벽을 두고 남녀가 따로 앉게 되어 있다. 이는 차별보다는 유가의 덕목인 유별(有別)이란 의미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가 사과를 먹되 사과나무도 나름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며 주인공으로서 대접받는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연기념물인 도동 측백나무 숲을 지나 동구 평광리(우씨 집성촌)로 가면 30~40년 전 경산에서 보았던 사과나무들이 경작되고 있다. 아마도 과수원으로서는 우리 지역에 남은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번 주말에는 도동 측백나무도 보고 인간과 사과나무가 유별이되 상생하며 존중하는 현장을 찾아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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