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노르웨이식 로또 당첨 관리법

석유산업 재난 숨기지 않고 미래 대비

국가 전체에 수익 돌아가는 산업으로

사회책임투자 연기금, GDP의 2.5배

정치권 비전과 정부 관리능력이 핵심

노르웨이 석유산업의 중심 도시 스타방에르(Stavanger). 도심 부둣가에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 석유박물관이 있다. 출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정중앙에서 손님을 맞는 일그러진 원형 파이프는 1980년, 123명의 사망자를 낸 원유시추플랫폼 전복사고의 잔해이다. 영상관에서 돌아가는 필름도 석유 1세대 가족이 경험한 상실감과 단절, 재난사고의 불안에 관한 것이다. 자랑과 영광의 뻔한 전시를 예상했던 관람객에게 이를테면 감동 있는 반전이었다.

노르웨이권 북해에서 유전이 확인된 것은 1969년 12월 23일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그 후 UN 협약에 따른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은 노르웨이에 또 다른 복권 당첨이었으니 국토 면적의 6배에 달하는 바다와 해저 자원을 떠안게 된 것이다. 갑자기 산유국이 된 노르웨이의 결정과 처신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첫째, 오일 머니를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문제. 노르웨이는 석유 수익금이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하고, 다국적 민간기업이나 특수 이익에 국부가 유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 합의했다. 1971년 국회는 '석유 10계명'을 통과시키며 이를 확인하고 국영기업을 설립, 대륙붕 관리를 모두 정부가 감독 통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석유 전문가가 전무했던 노르웨이는 외국의 기업과 전문가를 유치하여 기술과 관리 전략을 배워가며 사업에 착수하는 실용노선을 택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축적된 국내 수력발전 기술과 조선해운업의 역량을 최대한 동원하고,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외국기업에는 노르웨이 석유산업의 연구개발 비용을 부담시켰다. 1972년 설립된 국영석유기업 스타토일(Statoil)이 자력으로 가동될 때까지 이러한 배움의 과정에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둘째, 당첨금은 어디다 쓸까. 산업 초기 투자가 마무리되고 수익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이 돈을 쓰지 않고 비축하기로 결정한다. 미래 세대와 석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이웃나라 네덜란드가 천연가스 발굴과 함께 경기 과열로 경제위기를 먼저 겪은 것은 노르웨이에 귀한 교훈이 되었다. 1990년, 정부는 매년 석유 수익금 이윤의 4%만 정부예산으로 전환, 지출하고 나머지는 연기금으로 축적하기로 제도화했다. 석유개발에 참여하는 민간기업에는 78%의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국영기업이던 스타토일은 부분 민영화하여 현재 정부 지분율은 69%로 변화했다. 빠르게 증가한 석유기금, 즉 정부연기금은 2017년 하반기 1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노르웨이 GDP의 약 2.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이 기금을 운영하는 사회책임투자 방식 또한 윤리적이면서도 전문적이어서 경기 부침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대비한 종잣돈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셋째, 당첨자들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보수연합정권이 들어서 약간의 변동은 있으나, 국민들은 계속 많은 세금을 내는 중이다. 정부는 석유 수익이 '거의 없는 셈치고', 최대한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으로 복지'인력'SOC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NATO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크가 노르웨이 총리 시절 한 강연에서 토로했다. "노르웨이의 문제는 돈이 있는 데도 안 쓴다는 데 있다. 대신 납세자들에게 계속 높은 세금을 요구한다. 이 설득이 쉽겠는가." 그러나 노르웨이 정치인들은 있는 돈으로 선심 쓰며 표를 얻기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며 국민을 설득해나가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복권 당첨은 누구에게나 꿈 같은 일이다. 그러나 운으로 주어진 부를 지속시키는 데는 특별한 비전과 관리능력이 필요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정치권의 혜안과 국민을 설득하는 힘, 기존 체제에 충격을 최소화하며 변화를 안착시키는 정부의 프로페셔널한 관리 능력, 운에만 의존하지 않으려는 건실한 사회의 노력-노르웨이는 분명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쩌면 그 나라의 로또는 석유가 아니라, 석유로 인해 빚어지는 부작용('Oil Curse')을 피하려는 현명한 정치권과 유능한 정부가 아닐까. 그런데 그건 다시, 먼 나라 우리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돼지꿈을 꾸며 유전이 터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선거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그만한 정치인들을 선택하고 정부를 개선하는 것으로 일등 당첨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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