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니 만델라, '불굴의 투사·국모'에서 '극단적 성향'으로 추락

2일(현지시간) 81세로 세상을 떠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 영웅 고(故) 넬슨 만델라의 전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는 칭송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남아공 백인 정권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에 맞선 활동으로 한때 불굴의 '국모'로 추앙받았으나 이후 투쟁 과정에서 범죄와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무자비한 이념주의자'로 묘사되며 명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위니 만델라는 단순히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인 만델라의 전 부인이 아니라 남편의 정치적 동지로, 그 자신도 굳은 신념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였다. 특히 남편이 종신형을 선고받으면서 위니 만델라는 백인 인종차별 정권과의 투쟁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떠올랐고, 27년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흔들림 없이 투쟁했다. 자신도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돼 17개월간 구금되기도 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0년 석방됐을 때 위니 만델라가 남편과 손을 맞잡고 주먹을 함께 치켜든 모습은 해방투쟁의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위니 만델라는 1986년 자신이 몸담았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대의를 배신한 사람들에게는 목에 타이어를 걸어 불태워 죽이는 처벌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연설을 해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로이터통신은 위니 만델라의 타협 없는 방식과 용서를 거부하는 태도는 남편 만델라 전 대통령이 인종적 분열에서 벗어나 다원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화해를 옹호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차이는 결국 결혼 파탄에 일조했고, 위니 만델라를 향한 많은 남아공 국민의 존경심도 무너졌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반대로 극단적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위니 만델라에 대한 지지를 끝까지 유지했다.

결국, 만델라가 1994년 대통령에 선출돼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고 2년 후인 1996년, 약 38년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감옥에 있을 동안 부인의 부정행위를 언급하며 자신이 집으로 돌아온 후 "가장 외로운 남자"가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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