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사건'이 정국을 휩쓸면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심의 일그러진 댓글 문화에 대한 반성론이 나오고 있다. 과거 댓글 문제는 '악플'(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에 국한됐지만, 최근에는 댓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 당원 단체가 여론 주도를 위해 댓글 조작에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등 여론 왜곡으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라는 드루킹의 SNS 글은 여론에 대한 포털 댓글의 영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수천~수만 공감 '베스트 댓글'이 여론 지배
포털에서 활동하는 소수 '댓글러'(댓글을 주로 다는 이용자)의 의견이 정치 분야에서 여론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예전부터 지적돼 왔다. 더욱이 드루킹 사건으로 댓글과 공감 수의 기술적 조작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여론 왜곡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인터넷 댓글 분석 사이트 '워드미터'에 따르면 주요 포털 사이트 네이버 뉴스에는 하루 약 11만8천800여명이 30만7천여 개의 댓글(23일 기준)을 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네이버 뉴스 하루 평균 이용자(1천300만 명)의 0.9%에 불과하다. 전체 댓글 중 정치 관련 댓글은 12만7천여 건으로 41.4%를 차지했다.
댓글로 표현되는 소수 의견은 '밴드 왜건 효과'(주류의 견해로 받아들이는 현상)를 만나 인터넷상에서 여론으로 둔갑한다. 특정 의견이 다수에게 인정받으며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침묵의 나선 이론)하면서 소수의 여론 주도 현상은 더욱 심해지는 형국이다. 직장인 임모(29) 씨는 "네이버에서 정치 관련 기사를 볼 때 '베댓'(베스트 댓글)에 자연스레 동조하게 된다. 특히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일수록 베댓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보단 의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 구조에서 원인을 찾는다. 뉴스가 소비되는 몇몇 특정 사이트에서 댓글이 독점적으로 생산되고 해당 사이트가 '여론의 중심지'가 되면서 자칫 여론의 다양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털 사이트들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 편집'베스트 댓글 선정 등에 대한 알고리즘을 기밀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태처럼 여론 왜곡으로 공공의 이익을 해칠 경우, 포털 사이트는 관련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표현의 자유' 침해 목소리 만만찮아
일각에서는 인터넷 실명제나 댓글 원천 금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인터넷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뿐더러 공론장을 위축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국내에서는 이러한 근거로 2012년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포털에서 내놓는 대응책도 결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네이버는 ▷일일 댓글 작성 제한(20개) ▷댓글 작성 후 10초 이내 댓글 작성 금지 등의 방침을 내놓았다. 심지어 네이버는 아이디당 댓글 작성 개수를 현행 하루 20개에서 더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대해 박한우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용자의 댓글을 제한하는 등의 방침은 네이버가 개인에게 문제의 책임을 물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현저히 침해하는 방식이다. 플랫폼 독점이 문제의 원인인데도 이를 외면한 채 네이버는 문제의 원인을 사용자에게 돌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포털이 가진 여론 영향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점적 플랫폼 운영은 플랫폼의 다양성과 건전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여론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 기능을 폐지하고,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댓글을 달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박 교수는 "예컨대 매일신문 기사에 대한 댓글을 네이버에다가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각 언론사에서 댓글이 생산되게끔 해야 한다. 네이버가 지금처럼 시장 장악력과 사용자를 뺏기지 않으려는 형태의 정책을 고집해선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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