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생활정보지의 대명사처럼 된 '벼룩시장'은 영어의 'flea market'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flea market은 중고 물품을 파는 노천시장이었는데, 워낙 낡은 물건들이 많아 벼룩(flea)들이 들끓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미국 중소도시 지역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면 지역민들의 축제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물들을 들고나와 사고팔면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는 재미를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벼룩시장은 청계천 8가 인근의 황학동 벼룩시장이었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도 황학동 벼룩시장을 꽤 자주 갔었다. 가난한 대학생이 헌책방을 찾아 나선 길이었지만, 거기에 가면 낡고 신기한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의 내 몸으로는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골목, 무질서하게 벌여 잡동사니들 속에서는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공장에서 나올 때는 똑같이 만들어진 물건이라 하더라도 주인이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색깔도 모양도 달랐다. 벼룩시장의 이러한 특징을 문학계의 거목인 김열규 교수는 글쓰기와 연관시켜서 이야기를 했다.
수필은 이 벼룩시장을 닮았다. 얼핏 보아 하찮은 것 같은 물건들, 그냥 놓쳐 버리던 우리의 마음에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을 일들, 그러나 우리들의 생활 속을 언제나 어디에서나 굴러다니기에 신통스러울 것이 없으면서도 생활의 때가 낀 것들, 그래서 이미 우리들 자신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 수필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래서 수필은 그러한 물건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수필은 그 사소한 것, 그 미미한 것에 대한 애정이다. 생활의 때가 낀 물건이나 일을 두고서 하는 생활의 때가 낀 얘기, 깊이 인간화된 물건과 일에 대한 인간적인 얘기, 이러한 얘기일 때 수필은 더없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래서 수필은 가장 손때 묻은 글이 된다. 생활에 푹 절여져서 익은 글, 생활에 김치처럼 익은 글, 그게 수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라고 말한 피천득 교수의 말보다 수필에 대한 상이 좀 더 분명해진다. 자신의 소소한 삶의 기록들을 놓치지 않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수필가가 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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