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50만의 대도시 대구. 한때 전국 3대 도시였지만, 1990년대 이후 주력이었던 섬유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비해 오래도록 제대로 된 신산업 동력을 발굴해내지 못하면서 도시 경제는 날로 취약해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보니 청년들은 대구를 떠나고, 도시 규모도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중이다. 정주여건이 뛰어나 많은 이들이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터전이지만 과연 언제까지 이곳에서 여유롭게 머무를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늘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일자리 부족 싫어 떠나고 싶다
매일신문이 창간 72주년을 맞아 SNS를 통해 대구에 거주하는 2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한 부분(복수응답)으로 ▷일자리 부족(191명) ▷보수적 정서(186명), ▷침체된 경기와 낮은 도시활력(185명)이라는 공통적인 지적이 압도적이었다.
충격적인 것은 265명 중 99명(37%)는 "조만간 대구를 떠날 계획 혹은 의향을 갖고 있다"고 답한 부분이다. 대구 출신인가, 타지 출신인가에 차이 없이 비슷한 비율로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 이들이 대구를 떠나고 싶은 이유로는 ▷사회 저변에 깔린 보수적 정서(41명)라는 답이 가장 많았으며 ▷일자리 부족(28명) ▷보다 쾌적한 생활환경을 찾아서(19명) ▷낮은 임금(13명) 등의 순이었다.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대구로 이사한 지 4년째 라는 A씨는 "사는데 부족함 없고, 심지어 서울에서 누리지 못했던 여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어 좋지만 평생 이곳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했다. 바로 자녀들의 미래가 걱정이기 때문이다. A씨는 "좀 더 기회가 넓은 땅에 먼저 자리잡고 있어야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가야하지 않을까를 벌써 고민 중"이라며 "타지 사람의 눈에도 대구는 젊은이들이 없고, 활력이 부족한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낮은 임금도 우리 지역이 가진 고민거리 중 하나다. 사실 대구가 살기 좋은 점 중 하나로 '낮은 물가'가 꼽히지만, 물가가 저렴한 이유가 '낮은 임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반가운 일도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84만원. 전국 16개 시ㆍ도 가운데 제주(265만원) 다음으로 낮다. 전국 평균(352만원)보다는 70만원 가량 적고, 서울(394만원)과는 무려 120만원이나 차이가 벌어진다. 반면 근로 시간은 더 길다. 1인당 월 근로시간을 비교했을 때 대구는 178시간으로 전국 평균(173시간)보다 더 많다. 가장 근로시간이 짧은 곳은 서울로 166시간이었다. 결국 대구 근로자들은 서울에 비해 매달 12시간 더 일하지만 봉급은 120만원 적은 셈이다. 너도나도 숨막히는 서울ㆍ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결국은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하다보니 주거지는 대구에 두고 경북이나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대구의 우수한 교육, 문화, 의료 등 정주 여건을 누리면서 일자리는 다른 곳에서 찾는 이들이 늘면서 2015년 기준 대구지역 근로소득 추정 유입액은 5조4천억원으로 전국 4위권, 개인소득 대비 유입 근로소득의 비율이 0.125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사회저변에 깔린 보수적 정서 부담
대구를 떠나고 싶은 이유로 가장 많은 이들이 첫 손에 꼽은 것은 바로 '사회 저변에 깔린 보수적 정서'였다. 2016년 촛불사태와 대통령 탄핵, 그리고 이후 치러진 6ㆍ13 지방 선거를 통해 정치적 정서에는 많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대구 사회는 짙은 보수성과 서열을 중시하는 가부장적인 정서가 사회 전반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세대간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은 심각한 정도다. 특정 정당 몰아주기 등 수십년 일당 독식체제를 구축해 온 대구가 이번 6ㆍ13 지방선거에서조차 자치단체장 전부를 자유한국당이 차지하자, SNS 상에서는 "대구에서 산다고 말하기가 창피하다"는 젊은이들의 원성과 푸념이 폭주하기도 했다. 김기용(29)씨는 "대구에 살면서 가장 답답할 때가 어른들과 정치 이야기를 나눌 때"라며 "듣고 있자니 답답해서 속이 타지만, 의견 충돌을 빚자니 '어린 놈이 뭘 알아'라고 하면 입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의 신호도 있다. 기초 의회 다수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면서 변화의 기반을 마련한데다, 지자체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많은 것이다. 최정훈(34)씨는 "젊은 인구가 자꾸 빠져나가고 있는 대구의 특성상 한꺼번에 정치지형을 바꾸긴 힘들 것"이라며 "제발 언론부터 '대구=보수'라는 공식으로 낙인찍지 말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지켜봐 줬음 좋겠다"고 했다.
각 업계나 직업군 마다 워낙 연장자들이 줄줄이 자리잡고 있는 '층층시하'이다보니 청년들이 목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대구의 변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다. 나이와 직급에 따른 서열체계가 다른 도시보다 특히 더 공고한 편이다. B(39)씨는 "업계에서 주요 요직에 있는 연령층이 여전히 50대 후반에서 심지어 70대까지 있다보니 40대도 심지어는 어린애 취급을 받을 정도"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고, 묵살당하기 일쑤이다보니 아예 입을 떼지 않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대구 사람 특유의 괄괄한 성정도 타지인들에게는 익숙지 않다. C씨는 "대구 사람들은 솔직하고 불같은 면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면서 "특히 이런 불같은 스타일에 표현하는 방식마저 거칠고 투박한 경우가 생겨나고, 말투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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