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 굵기의 소나무가 숲을 이룬 언덕, 십수 마리의 꿩 무리가 내려 앉아 먹이를 쪼고 있는 '군치도(群雉圖) 10폭 병풍'은 그 생생함이 실제 경치인 듯 먹이를 다투는 꿩들이 화면을 튀어나올 것 같다.
#단청을 그릴 때 쓰는 안료인 석채를 이용해 닥종이에 그린 굴비는 쩍 벌린 아가리가 사진인양 착각이 들고 기암괴석의 해변에 들이치는 파도와 하얀 포말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계절의 자연을 담은 '산수화 12폭 병풍'은 1년의 시간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올해 83세로 대구경북 화단의 최고령 현역작가인 한국화가 일파(一坡) 박영근 화백. 1936년 전북 김제에서 6남3녀 중 5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면서 그림그리기가 평생의 업이 됐고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좌화우서'(左畵右書)의 화가로 정평이 나있다.
1973년 당시 경상감영공원 인근에 있던 대안다방서 4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 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45년 간 대구에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1956년 20세에 첫 전시회, 그리고 매진
6'25전쟁이 끝나고 3년 흐른 세월. 넉넉하지 않던 시절에 대학을 가려니 돈이 없었다. 이때 평소 박 화백의 재능을 눈여겨본 지인의 도움과 전북일보의 후원을 받아 전주문화공보관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한 전시였는데 작품이 다 팔려 등록금과 생활비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내기 화가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그의 재능과 작품성이 높이 평가된 발판이 됐다. 같은 해 부산 앙떼빵땅전서 대상인 천상(天賞)도 받았다.
이듬해 조선대 미술과에 입학한 박 화백은 서양화 일색의 학과 분위기에 적응해나가는 데 "주변에서 동양화를 그려야 밥 먹기 쉽다"는 말에 선배 한 명과 의기투합, 교수를 졸라 학과에 조그마한 동양화 아틀리에 공간을 얻어 한국화에 매진했다. 초'중'고를 다니며 특별히 스승에게 사사를 받은 적이 없지만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왜 '좌화우서'인가
박 화백이 왼손으로 그림 그리고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된 까닭은 4세 때 마루턱에서 떨어져 오른손을 크게 접질리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 왼손으로 글을 쓴다는 게 남세스럽게 여긴 그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글씨만은 오른손으로 쓰게 된 것이다.
이런 노력은 한국화에서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화제에도 일가견을 갖게 만든 원인이 됐다. 흔히 그림에 뛰어나도 화제가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반해 박 화백은 그림과 글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재능을 보이게 된 것이다.
◆남종화에 바탕을 둔 화풍
산수화를 기본으로 한 동양화는 보통 북종화와 남종화로 대별된다. 북종화는 선을 위주로 채색을 많이 사용하고 은은한 화풍인 반면에 남종화는 멀리서 보면 선이 굵게 잘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선 형태가 조금 불투명하여 실제 형태보다는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남성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 같은 남종화는 우리나라에서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한 소치 허련, 미산 허영, 남종 허건과 의제 허백련으로 이어져 왔다
박 화백의 화풍도 크게 보면 남종화를 따르지만 그렇다고 특정 스승을 두고 익힌 화풍은 아니다.
'인적 없는 빈 산에 물 흐르고 꽃이 절로 피 듯' 그의 그림은 타고난 재능이 바탕이다. 그래서 어느 화파, 어느 문하에 속하지 않고 화조, 산수, 인물 등을 가리지 않고 다 잘 그리며 그 중에서도 수묵산수는 평생을 두고 거듭해온 우리나라 산하의 꾸준한 묘사로 이룩한 백미에 속한다. 실경에 가까운 채색감과 뛰어난 소묘력, 빠르고도 부드러운 붓놀림은 화폭의 힘을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젊어서부터 어떤 그림도 한 번 보면 그대로 그려냈다"는 박 화백은 선배들의 조언이나 앞선 화가들의 그림을 계속 연구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다듬었고 관련 자료와 책을 통해 독학으로 화법을 구축했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꿩 무리를 그린 '군치도'에서 유감없이 드러낸다. 남종문인화풍의 소나무와 바위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억새 숲에서 12마리의 꿩이 먹이를 쫓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시선 처리 등은 순간적으로나마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박 화백은 또 대중들에게는 '목단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목단그림은 담채보다 유화식 착색으로 두껍게 그리는데 이게 목단의 생생함과 꽃잎에 힘을 부여해 일반인들에 인기를 얻고 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묵점을 뚝뚝 찍어내는 기법으로 표현되는 흐드러진 꽃잎들, 삼베실이 늘어지듯 부드러운 필선으로 완성되는 바위나 산, 붓 전체를 몇 번 움직였더니 나타나는 사물의 명암들….
그의 화법은 팔순을 넘긴 노 화백의 붓놀림이라기엔 힘이 넘친다. 크게 의식하지 않고 무작위적으로 흰 종이 위를 오가던 붓은 산수화 한 폭을 뚝딱 그려냈다.
박 화백은 현재 20평 남짓한 서민아파트를 아틀리에 삼아 이런 재능을 머리가 희끗한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으며 그의 재능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선뜻 나서 도움을 주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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