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동영의 자전거로 떠나는 일본 여행](23) 평화로운 땅 삿포르

여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제루부의 언덕.
여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제루부의 언덕.

◆평화로운 땅도 자연 재해를 피해갈 수는 없다.

약 열흘 전 진도7의 지진이 홋카이도(北海道)를 덮쳤다. 진앙지가 삿포로시(札幌市)에서 약 70Km 떨어진 외곽지인 아쓰마정(厚真町)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신치토세 공항도 며칠간 폐쇄됐다. 전기도 끊기고 물 공급도 원활치 않다. 불과 한 달여 전 두 바퀴로 자유롭게 누비던 정경들과 교차되어 마음이 짠하다.

하지만, "과연! 안전대비에 철저한 일본답게" 차분하게 그 혼돈 속에서 빠져나오는 듯하다. 자전거로 돌다보면 한적한 오지라도 예외 없이 도로포장이 촘촘히 되어있고 지나치리만큼 안전방책들이 준비되어 있음을 쉽사리 발견한다. 곳곳에 자판기, 편의점들도 빠짐없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나칠 정도라고 느껴지지만 늘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국가는 철저히 준비하고, 국민들은 신뢰하고 따른다.'는 무언의 강한 약속이 사회곳곳에 흐르고 있다. 그 무거운 신뢰가 일본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여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제루부의 언덕.
여름에는 꽃으로,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이는 제루부의 언덕.

◆일본, 일본인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의 한국인들은 '싫어한다.'고 답한다. 독도, 위안부, 소녀상, 신사참배, 교과서 왜곡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민감해진다. 한일축구가 벌어지면 얼굴이 빨개진다. 일본 정치인 얘기가 나오면 더욱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연일 꽉 차서 한해 700만명의 여행객이 일본 곳곳을 찾는다. 일본 음식점은 늘 인기다. 일본 맛 집 사이트도 늘 선두자리다. 일본 쇼핑은 늘 북적댄다. 일본 옷들도 인기 만점이다. 그들의 친절함 세심함에 때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다소 이중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치 역사적인 일본은 No! 사회 문화적으로는 Yes! 이다. 이 모순이 뒤섞여 혼재하는 감정들이 늘 양국사이에는 흐른다. 정치, 역사를 떠나 길에서 만나본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매년 1,100만 명이 서로 교류하는 시대에 걸 맞는 보다 세련된 시각이 요구되어지는 지금이다. 중국, 일본이라는 G2, G3에 끼어서도 큰소리치고 당당함을 잃지 않는 우리의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

비에이에서 후라노 가는 길에 만난 대광야.
비에이에서 후라노 가는 길에 만난 대광야.

◆화인가도의 길 , 아사히가와(旭川)~비에이(美瑛)~후라노(富良野)

인구 40만 명의 아사히가와는 홋카이도에서 삿포로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크다고 하지만 막상 아사히가와역에 도착하면 한적한 느낌마저 든다.

이시카리강(石狩川)이 만드는 도시는 한적한 유럽도시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른 아침 삿포로역에서 약140Km 떨어진 이곳 아사히가와까지는 JR로 움직인다. 안내데스크에서 지도를 한 장 받아든다. 북부지역의 여정 포인트는 아사히가와, 비에이, 후라노, 청의호수다. 매년 300만 명이 찾는다는 동물원과 아사히가와 시내 라이딩을 하고 싶지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라 생략한다. 아사히가와에서 후라노로 이어지는 57Km는 '인간과 꽃이 어우러지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화인가도(花人街道)'라고 이름 붙였다. 이름 그대로 가는 길 내내 이름 모를 꽃들이 길잡이를 한다. 비에이 까지는 30Km 남짓이라 금새 갈듯 하지만 꽃길들이 가로 연신 막는다. 질주하듯 쭉 뻗은 길을 달리면 사람과 차들이 웅성대는 곳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비에이 여정이 시작된다. '제루부 언덕(ぜるぶの丘)'이다. '북위 43° 35' 13" 동경 142° 28' 13" ' 이라는 위치판이 선명하다. 위치판 앞의 자리 쟁탈전이 한창이다. 한참을 기다려 이곳에 다녀갔음을 새기는 증거사진을 찍는다. 사람들 틈새로 천천히 걷다보면 이윽고 본격적으로 홋카이도에 왔음을 실감한다. 언덕뒤쪽으로 오른다. 온통 자연이다. 구름이다. 바람이다. 꽃이다. 자전거로 뒤쪽 언덕길을 페달질 한다. 패치워크의 길이다. 누가 명명한지는 모르되 조각난 길들이 묶여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켄과 메리나무, 세븐 스타나무, 자작나무길, 가족나무, 크리스마스 나무 그리고 마일드세븐 언덕, 호쿠세이 전망대 등' 광활한 평원에 펼쳐지는 자연들이 온갖 오감을 멈추게 한다.

나무의 형상을 따라 입소문이 전해지고 담배회사와 자동차 광고 등의 배경으로 사용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다. 어느 각도, 어느 위치, 어떤 카메라도 들이대면 다 작품이 된다. 전문작가가 따로 없다. 굳이 고도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펼쳐지는 광경이 이미 예술이다. 비에이 투어에서 자전거는 정말이지 큰 복덩이다. 슬슬 페달질 하다가, 마구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비에이의 광활한 자연을 200% 만끽한다. 굳이 어렵사리 나무이름을 찾아가지 않아도 좋다. 이미 자유이다.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에 자리한 마일드세븐 언덕.1977년 담배 마일드세븐의 패키지 광고로 유명해진 곳이다.
비에이 패치워크 로드에 자리한 마일드세븐 언덕.1977년 담배 마일드세븐의 패키지 광고로 유명해진 곳이다.

◆홋카이도의 마지막 라이딩 종착점 , 꽃의 도시 후라노(富良野)

이미 오후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서둘러 마지막 종착지인 후라노시로 향한다. 화인가도의 길은 계속 이어진다. 약20Km 정도 달리면 니시후라노역 인근의 '요우코소 후라노헤(ようこそ 富良野へ-어서오세요, 후라노에)'라는 꽃말로 만들어진 표시 글이 나온다. 후라노시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것이다. 후라노의 꽃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운이 필요하다. 후라노가 만개 할 때를 잘 골라야한다. 팜도미타 등 후라노를 상징하는 꽃밭을 빠른 속도로 둘러본다. 저녁 해가 완전히 넘어갈 무렵 시골스러운 후라노역에 도착했다. 일본 일주 자전거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시골스러운 한적한 후라노역을 바라보자니 괜시리 눈물이 나오려한다. 지난 11개월 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휙 하고 돌아간다. 이미, 오후 7시를 넘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왔는데 시골이라 숙소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려면 어떠랴. 대장정이 끝나니 마음이 탁 놓여져 평화롭기까지 하다.

숙소리스트를 보고 대 여섯 곳 전화를 하여 다행히 민숙의 객실을 구한다. 인근 몰에서 홋카이도의 마지막 밤을 자축하는 파티물을 맥주랑 준비한다. 그렇게 일본자전거의 마지막 밤은 저문다. 다음날, 물빛이 고와서 애플의 광고에 출연했다는 '청의호수(青い池)'를 가보고 싶었지만 숙제로 남긴다.

◆일본 자전거 일주가 주는 선물-'나에겐 아직 꿈이 있다'

많은 시간, 비용을 투자하여 열정으로 달렸던 일본 일주 라이딩! 그 끝은 무엇일까? 자랑도 과시도 아니다. 허세도 아니다. 문득 내가 태어난, 1963년 루터킹이 일갈한 ' I have a dream!'이 떠오른다. 그 꿈이 무언지는 알 수 없으나 꿈틀대는 용트림을 느낀다. 나이, 세월, 가진 것과 없는 것, 주어진 여건의 유불리와 관계없이 "그 꿈-The Dream" 을 향한 당당함을 얻는다. 삶은 전과후로 달라진다. 일본 자전거를 타기전과 그것을 이룬 후의 극명한 차이! "삶에 철저히 당당해질 것".

후라노에서 삿포로 향하는 내내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다.

그래, "바보야! 이게 행복이야!"

일본 라이딩의 또 다른 상징점인 '돗토리현 다이센산(大山)'을 마지막으로 찍으려 한다.

여행스케치 대표(toursk@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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