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 출판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책이 등장했다. 고려원에서 내놓은 김용(金庸·진융)의 '영웅문'이다. 만화방·대여소에서 저급한 무협 소설을 빌려 읽던 독자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3부작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18권으로 묶어 출간했는데, 800만 부 이상 팔렸다. '영웅문'은 한국 출판사에서 갖다 붙인 이름이고, 원래는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으로 불린다.
재미있는 얘기지만, 한국의 무협 작가들은 김용보다는 대만 작가 와룡생(臥龍生)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무협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정파(正派)와 사파(邪派)' '9파1방' 구도를 만든 것은 와룡생이다.
아직도 인터넷 무협 관련 게시판에는 '김용 작품 중 가장 무공이 센 주인공은 누구인가' 하는 논쟁이 벌어진다.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화산논검(華山論劍)이 시발점이다. 당대 초고수 5명이 화산에서 7일 밤낮을 겨룬 끝에 천하오절(天下五絶)을 정했다. '사조삼부곡'의 각 주인공인 곽정, 양과, 장무기가 천하오절과 비교되고, '천룡팔부'의 소봉, '소호강호'의 동방불패 등도 유력 후보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수는 '천룡팔부'에 잠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스님(無明僧)이다. 무명승은 초고수들을 모두 일격에 때려 눕혔으니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김용에 대한 찬사는 수없이 많다. '칼과 검의 그림자가 번득이는 소용돌이에서도 인간성의 가장 순결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능하고, 웃고 떠들고 화내고 욕하는 것이 모두 문장이 됐다.' '뛰어난 역사 인식으로 칭기즈칸, 주원장 같은 역사적 인물을 무협 소설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이 독보적이었다.'
지난달 30일 김용이 사망함에 따라 양우생, 고룡과 함께 무협 소설의 세 거두가 모두 사라졌다. 강호제현(江湖諸賢) 모두 아쉬워할 만한 대목이다. 소설가보다는 언론인으로 불리길 원했던 김용은 생전에 대협(大俠)으로 통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범했기 때문인데, 유명인이라면 배워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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