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별 보기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지난 주말 대구 사는 후배가 호미곶으로 놀러 왔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와 호미곶 등대, 쾌응환조난기념비를 돌아보면서 20세기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일을 생각했다.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그는 말했다. 반역의 역사를 청산 못 한 탓에 세상을 보는 맑은 눈들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에다 천문 관측 시설을 마련해 준다고 하였다. 별을 보면서 거짓 없는 맑은 눈을 갖도록 도와주려는 의도였다.

별을 바라보는 것, 왠지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종종 밤하늘을 본다. 북두칠성이 바로 눈앞이다. 북극성을 사이에 두고 카시오페이아가 반짝인다. 어린 손님이 왔을 때는 꼭 나가서 별자리를 함께 본다. 파랗게 반짝이는 금성과 붉은 화성은 쉽게 만날 수 있다.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리온자리도 볼 수 있다. 아이들과 나누는 별 이야기는 영혼을 맑게 해준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맞게 비비며, 가만히 내 어깨에 기대온'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저 많은 별들 가운데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곱게 잠든' 거라고 목동은 말한다. 그 별나라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흔히 등장하는 갈등, 미움, 탐욕은 찾아볼 수 없다. 별이 빛나는 하늘, 마음이 맑은 땅, 이웃과 나누는 가냘픈 사랑. 참 평화로운 세상 모습이다. 어디 문학작품에만 별나라가 있으랴.

요즘 토요일 저녁마다 호미곶에서 멀지 않은 읍내 작은 성당을 찾는다. 학생 미사이기 때문에 강론 중심이 어린이들이다. 젊은 사제는 열 남짓한 아이를 위하여 매번 앞으로 내려와서 그들과 눈을 맞춘다. '왕이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지요?'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세종대왕요' '광개토대왕요' 원하는 대답을 기다리며 사제는 아이들에게 더욱 몸을 낮추며 '또, 또 누가 생각나지?' 그러나 아이는 원하는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하고 만다. '우리 할아버지요!' 성당 가득히 웃음이 터진다. 헛기침을 내뱉으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독점하는 할아버지가 그 아이에게는 왕이 틀림없었다. 가슴을 열고 조근조근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러다가 한바탕 같이 웃는 자리, 참 예쁘다. 영혼이 맑아진다.

우리는 별 보기를 좋아한다. 밤하늘에서 가장 가냘프게 빛나지만 우리 영혼을 맑게 해주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서 맑은 눈이 사라진 게 아니라 탐욕이 잠깐 역사와 현실을 가리고 있을 뿐이라고 그 후배에게 말했다. 오늘도 여전히 별은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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