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반지/ 이 향(1964~ )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끼고 있던 반지를 벗었다

희미한 자국이

조금 슬픈 듯 자유로워 보였다 처음,

반지를 끼던 날이 생각났다

당신 때문이라고 밀어붙이지만

내 스스로 테두리를 만들었다는 걸

빠져나와 보면 너도 알겠지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저 강기슭 너머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그때도

꼭 나쁘지만은 않았지

반지는 반지대로 손가락은 손가락인 채로

가끔은 공유했던 외로움을 서로에게 끼우며

반지는

테두리를 더 고집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집 『희다』 (문학동네, 2013)

* * *

손가락에 대한 '반지'의 사랑을 통해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자,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둥근 테두리! 그것을 보고 슬픔과 자유로움을 함께 느끼는 건 만남과 헤어짐이 동시에 뇌리를 스쳐 가서인가? 때때로, 만남은 억압과 복종을 요구하고, 헤어짐은 해방과 자유를 허락한다. 억압과 해방, 복종과 자유, 옭아맴과 벗어남은 사랑과 결별이 갖는 각각의 속성이다.

따라서 사랑은 해방과 자유보다는 억압과 복종에 더 가까운 것! 그렇지만 "저 강기슭 너머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그때"의 황홀한 사랑의 순간을 떠올려 보라! 만해(萬海)의 시구처럼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한"게 아닐까? 그래서 "반지는 반지대로 손가락은 손가락인 채로" 하나의 테두리를 남기듯, 연인은 연인끼리 "외로움을 서로에게 끼우며" 그렇게 사랑하고 공존해야 할 터!

시인 ·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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