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의 부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방법은 우당 이회영, 인촌 김성수처럼 교육에 투자하거나 간송 전형필처럼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것이었다. 이 책은 전형필이 문화재를 수집하게 된 계기, 수집하는 과정, 이를 보관하기 위해 최초의 사립 박물관이자 오늘날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건립하는 과정 등을 담고 있는 간송家에서 감수하고 공인된 최초의 평전이다. 저자는 재미 작가로 1996년부터 간송미술관을 드나들었고 2006년 간송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국보와 보물을 보면서 전형필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종로 4가에서 미곡상을 운영한 선조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전형필은 식민지시대 조선청년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결국 위창 오세창, 월탄 박종화,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등 당대 기라성 같은 문화예술인과 교류하고 후원하면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일제가 강탈하려는 문화재를 지키고자 결심한다.
일본의 대수장가인 50대의 무라카미가 전형필에게 '고려청자운학문매병'(국보 68호)을 구입한 값의 두 배를 줄 테니 양보하라고 하자, 20대의 전형필은 "선생께서 천학매병보다 더 좋은 청자를 저에게 주신다면 그 대가는 시세대로 드리는 동시에 천학매병은 제가 치른 값에 드리겠습니다."(33쪽)라고 할 때는 문화재에 대한 전형필의 열정뿐만 아니라 배짱과 기백을 느낄 수 있다. 전형필은 대영박물관에 수장될 뻔한 고려청자 20점을 영국인 개스비로부터 매수하기 위해 직접 일본에 건너가 며칠간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나는 고려청자를 (개인적인 치부가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하면서 조선에도 이런 찬란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동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314쪽)고 하며 결국 개스비를 감동시켜 40만 원(현재 가격 약 1200억 원)에 구입하는 장면은 읽는 이 또한 감동하게 한다. 그리고 《훈민정음》(국보 70호)을 1만 원에 입수했으나 당시 한글말살정책을 편 일제가 알면 문제가 될까 염려해 광복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고 한국전쟁 때 피난가면서 베개에 넣어서까지 잠을 잔 전형필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훈민정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전형필의 수장품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상당수 분실되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문화재를 지키지 못한 결과다. 전형필이 활동한 1920년대부터 일제는 우리 문화재를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였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 경제논리가 우선시된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이때까지 우리는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일본은 서울의 인사동을 비롯해 전국의 고서점상을 돌며 우리 문화재를 매입했다. 현재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대략 17만 점이라고 한다. 최근에야 비로소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깨닫고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려고 하는 등 문화재를 지키려는 여러 움직임이 보인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민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합심하여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쓰기는 더 어렵다. 그 옛날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 전형필이 대신 한 것은 부자들이 가치 있는 일에 재산을 사용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으로 오늘날 가진 자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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