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플라이룸/김우재 지음/김영사 펴냄

플라이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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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썩는 냄새가 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초파리, 이 책은 초파리 유전학자가 초파리 연구에 대해, 과학과 사회에 대해, 그리고 과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은이 김우재 박사가 자신의 연구와 그 학문의 역사를 소개하고, 과학과 사회의 공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초파리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아니라, 초파리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 인간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곤충

노랑 초파리(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의 기원은 아프리카 동부의 초원이다. 인간이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거주지를 넓히면서 초파리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간과 초파리는, 인간과 개보다 더 오래 전부터 함께 살아왔다.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노랑 초파리는 인간의 거주지에서 나오는 음식 주변에 머무는 잡식성 곤충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 곤충을 성가신 해충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초파리의 학명 'Drosophilidae(이슬을 사랑하는 동물)'이 뜻하듯 생물학자들은 초파리를 유전학의 대표적인 모델 생물이자 아름다운 존재로 이해한다. 초파리가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의 중개자 역할을 하며 다양한 생물학의 시대를 열게 한 배경이기 때문이다.

◇ "초파리 유전학은 기초과학의 지표"

책은 초파리 유전학이 한 사회의 기초과학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초과학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생물은 많다. 그럼에도 지은이가 특히 초파리 유전학을 강조하는 것은 생물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영역을 연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가 초파리 유전학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생태학에서 발생학과 질병연구까지, 초파리는 다른 모델생물들보다 우위에 서 있다. 초파리를 연구하는 이들은 정말 초파리를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다. 초파리를 사랑하지 않고, 초파리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생쥐를 싫어해도 생쥐를 연구하는 사람은 많지만…"이라고 말한다.

◇ "과학연구 과정과 성과 공유해야"

책은 과학연구계의 닫힌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열린연구'를 강조했던 미국의 유전학자 토마스 헌트 모건의 말을 인용한다. 모건은 초파리 실험으로 생물 염색체지도를 입증한 인물이다.

1917년 모건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연구 재료를, 개인 혹은 연구 공동체와 공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공유 대상은 우리가 연구해왔던 재료뿐만 아니라, 아직 논문으로 출간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연구자에게 도움이 될 재료를 포함한다. 연구 아이디어나 연구의 진척을 숨기는 것은, 학생들에게 해악이 될뿐더러 과학이 진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학의 진보야말로 우리가 가장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정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연구의 이런 에토스야 말로 왜 우리가 초파리 연구공동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지은이는 모건의 '공동체'라는 언급에 특히 주목한다. 과학연구는 그 과정을 공유하고 개방할 때 더 건강해질 수 있으며, 발전적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연구 주제가 의학적 응용에 가깝고 질병 치료제나 줄기세포처럼 자본이 대거 투입되는 분야의 연구자들은 아예 폐쇄적인 환경에서 연구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게 현실이다. 자신의 연구가 인류의 숙원을 풀 너무나도 중요한 연구이기 때문에, 그 연구가 완결되기 전까지는 연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지적한다.

◇ 정부·기업 등 후원자에 휘둘리는 과학

한국의 과학연구 현실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는다.

책은 우리나라 과학연구비 대부분을 정부가 출연하고, 이런 사정으로 과학자들은 자신의 목줄을 정부에 내놓고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방침이나 기대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싶어도 그런 사람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줄 기관이 없으니 창의적인 연구가 어렵다는 것이다.

덧붙여 지은이는 "그나마 존재하는 기업의 과학부문 지원자금도 상금이나 학교기부 등의 형태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과학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연구비의 형태로 지원되는 제3섹터의 자금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토로한다.

◇ "인터넷 검색하고 공부하며 읽어 달라"

이 책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 지은이는 "최대한 전문용어를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소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접 원서를 소개하고 그 내용을 풀어야 했다. 세세하게 설명한 부분도 있지만, 독자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도록 내버려 둔 부분들도 많다" 며 "책 안에 머물지 말고, 랩톱이든 스마트폰이든, 함께 들고 읽어주길 바란다. 그러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게 되거든, 거기 머물며 공부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공부를 자신의 현장과, 또 사회와 연결시켜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 책에 대해 "국내 과학 서적은 외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삶이나 이론을 소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과학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잘 꾸며진 동화에 불과하다. 김우재 교수는 자신의 초파리 연구와 그 연구가 이루어지는 실험실 현장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초파리 연구 현장은 화려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과학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고 과학과 사회의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사고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평한다.

책은 1장 사회: 기초과학의 지표, 초파리. 2장 과학: 초파리, 시간의 유전학. 3장 역사: 초파리, 생물학의 두 날개 등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308쪽, 1만4천800원.

▷ 지은이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어린 시절부터 꿀벌과 개미 등 사회성 곤충에 관심이 많았다.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과대(POSTECH)에서 분자바이러스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캐나다 오타와대학교에서 사회적 행동의 분자적 기제와 신경회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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