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그 물음에 '불'이라고 대답한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였습니다. 아마도 그가 본 것은 태양이었겠지요? 만물이 모두 태양에 목숨 빚을 지고 있으니 당연합니다. 불타오르는 태양이 없었다면 생명의 온기는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태양에게도 생일이 있을까요? 동양이건 서양이건 옛 사람들은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를 태양의 생일로 여겼습니다. 밤이 가장 긴 날인 동지를 동양에서는 일양(一陽)이 싹트는 날로 여겼고, 서양에서는 그 즈음인 12월 25일을 태양신의 탄생일로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태양신의 탄생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선포한 것은 4세기, 로마교회였습니다. 그것이 우연 같지는 않지요? 교회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니 불로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는 태양신의 탄생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삼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늘 아기의 탄생일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크리스마스라고 할 크리스마스를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크리스마스는 기적입니다. 새 생명이 잉태되는 기적, 스크루지 같은 자린고비의 삶까지도 바꾸는 기적! '나'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하면 닫힌 마음이 열리고 인색하게 굽어있는 손이 이웃을 향해 펼쳐지지요? 그러면 안에서부터 생을 긍정하는 미소가 올라와 굳은 얼굴이 풀립니다.
잘 웃으십니까? 웃으면 복이 온다면서요? 오랫동안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면 틈이 사라진 거지요? 빛이 들어올 틈이, 바람이 들어올 틈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뿌리를 내려 서로 간직하는 사이가 될 틈이.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그 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물샐 틈 없이 빡빡하게 돈이나 세고 있는 스크루지는 고립의 병을 앓고 있는 거지요? 서로서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의존성을 무시하고 홀로 고립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삶에서 버림받은 것이고, 삶을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왜 그렇게 고립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요? 젊은 날 지독했던 가난이 뼈에 사무쳐 아등바등 돈을 모았으나 돈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되다 보니 모으기만 하는 거지요? 제일 두려운 것이 가난뱅이로 살다가 죽는 거라고, 정직하게 돈 버는 일은 뭐가 잘못된 거냐고 방어하는 그를 논리로 승복시킬 수는 없겠습니다. 싫으면 떠날 밖에요. 그러니 그에게 친구가 없고 이웃이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인도 없지요? 가난한 시절 서로 좋아하고 의지하여 약혼까지 한 여인도 이렇게 말하며 그를 떠났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두려워해요. 영혼이 변하고, 사는 모습이 변했어요. 이제 난 당신에게 가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만 헤어지지요."

돈에 집착하며 인색하게 굴다 참 좋은 여자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물샐 틈 없이 돈 새는 일을 막는 일만 하고 사는 스크루지의 고립된 삶에 그 후로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인색하기 그지없는 그를 좋아할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인생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그는 나이 들수록 더욱 고집스럽게 변해갔습니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성실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이 그의 유일한 취미였습니다. 돈 뒤에 숨어 인생을 망치고 있는 거지요.
그날도 역시 그는 "땅에는 평화, 이웃에게는 사랑을"이라 노래하는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크리스마스가 싫다며, 그냥 놀고먹으며 기부나 받으려 하는 게으른 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싫다는데, 그의 빡빡한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기적인 것은 그렇게 일그러진 그에게도 크리스마스가 찾아온다는 거지요? 그 크리스마스는 햇살처럼, 기도처럼, 솜사탕처럼 찾아든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게, 평생 사무실에 갇혀 돈만 세다 죽은 동업자 말리의 혼령으로, 죽음의 공포로 찾아들었습니다.
한번도 '나'의 일이라 생각지 않았던 죽음은 그에게 까마득한 공포의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지금껏 움켜잡고, 때로는 그 뒤에 숨기도 하는 재물이 어떠한 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순간에 알리며 '나'를 절벽 위에 세운 매정하고도 무서운 힘이었습니다.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 환상 속에서 그는 봅니다. 부지런히 돈을 벌며 살아온 자기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해주지 않고 기려주지 않는 현실을. 돈독이 올라 진정 소중한 것을 놓쳐온 초라한 자기 죽음의 이야기에 참담해하며 부끄러워하며 그는 다시 태어납니다.
죽음을 느끼고 있는 새는 그 소리가 구슬프고, 죽음을 기억하면서 인간은 비로소 진실해진다면서요? 잘 사기 위해서는,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기억해야 하나봅니다. 죽음의 공포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나서야 스크루지는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를 사로잡은 채 그에게 채찍질을 했던 힘이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었음도 알게 됩니다.
가난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인 거지요? 모으고 또 모아도 여전히 배가 고픈 그가 어떻게 자기를 위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돈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한 푼의 돈에도 벌벌 떠는 그는 가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속아 평생을 돈의 노예로 살아왔던 겁니다. 평생을 돈 세는 일로 인생을 낭비했다며 후회하는 말리의 혼령은 바로 스크루지의 그림자였습니다. 그 그림자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고 살았는지도 깨우치며 스크루지는 스스로를 풀어줄 수 있게 됩니다.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돈이 보입니다. 그의 돈은 물처럼 생명수가 되어 사람을 살립니다. 누군가의 밥이 되고, 연료가 되고, 노래가 됩니다. 남을 향해 미소를 보내기 시작하고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고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그의 인생에 크리스마스가, 기적이 찾아온 거지요?
크리스마스는 하늘 아기가 내게로 온 날입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와 당신 안에 하늘 아기를 낳았는지, 아니면 낳고 있는지요? 하늘 아기가 당신의 품에서, 당신의 울타리에서 매일매일 한 뼘씩 커지는 햇빛을 받아 자라나고 있다면 비록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마구간처럼 비루한 곳이어도 삶 자체는 비루해질 틈이 없이 환하게 빛나 동방박사 세 사람을 부를 것입니다.
'나'의 하늘 아기가 '나'를 향해 화사하게 웃고 두려움 없이 손을 뻗고 있다면 '나'도 그 힘에 이끌려 미소를 잃지 않으며 인연 있는 누군가를 향해 손 내밀게 되지 않을까요? 하늘 아기는 신적 존엄, 내 자존감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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