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교에서 계율을 전해주는 의식인 수계를 두 번 받았다. 첫 번째는 어릴 때 어머니 따라 절에 가서 받은 것이었고, 두 번째는 군대 훈련소에서 초코파이에 이끌려 간 것이었다. 군대에서 받을 때 법사는 수계식을 마치면서 "오늘 계율을 받았으니 계율에서 자유로워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율을 지키려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바르게 살겠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라고 했다. 계율을 의무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자유롭지 못하게 되지만,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면 모든 행동이 저절로 계율에 맞게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군량만 축내는 사람 같았던 법사가 부처님처럼 보였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계율을 지키지만 어긴 경우도 있고, 계율을 어겼지만 지킨 경우도 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켰지만 입시 부정, 취업 청탁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가 노력한 것 이상의 이익을 가지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표면적인 계율을 지켰다고 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것을 가로챈 것이므로 계율을 지킨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고하는 말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한 사람은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킨 것이 아니다. 반면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모두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를 즐길 정도의 절제된 음주를 하는 것은 계율을 어긴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계율은 그 말뜻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계율이 나오게 된 이유를 생각하는 데 참뜻이 있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도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문 규정을 잘 지키는 것이 바른 말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 하나하나를 불편해 한다. '플래카드'가 맞는지 '플랜카드'가 맞는지, '십상이다'인지 '쉽상이다'인지 헷갈릴 때는 일일이 확인해 보고 맞춤법에 맞게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굳이 '플래카드'라고 할 필요 없이 '현수막'이라고 하면 되고, '권력은 타락하기 십상이다'라고 할 필요 없이 '권력은 타락하기 쉽다'라고 하면 된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다. 맞춤법을 몰라도 아는 사람보다 더 나은 표현을 할 수 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에는 어법에는 맞지만 바르지 않은 말들이 참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가족, 동료, 학생들에게 했던 바르지 못한 말을 반성한다. 내년에는 바른말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다짐해 본다.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는 오늘 자로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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