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설(2월 5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가족, 친지들과 어울려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차례 음식을 주문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차례를 지내는 순서를 배운다. 영상으로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계좌로 부쳐주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으

로 설 모습이 '간소화·지능화'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되고 달라진 설 풍속도를 알아봤다.

◆성평등 확산=결혼 5년 차 정미경(34·가명) 씨는 이번 설 연휴에는 남편과 함께 서울 친정을 방문할 계획이다. 지난해 시댁을 다녀왔기 때문에 올해는 친정 식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시댁의 눈치가 보일 법도 하지만, 정 씨는 시댁의 배려로 눈치 걱정까지 덜었다. "시댁에서도 똑같은 부모인데 무조건 시댁부터 챙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댁 먼저'라는 생각도 바뀌어 양가를 방문하는 것은 당연시됐다. 두 아들을 둔 김명순(67·가명) 씨는 "며느리 입장을 생각해 보고 또 같은 부모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양가 부모를 모두 찾아뵙거나, 또는 동일하게 모시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도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뱃돈도 모바일 시대="빳빳한 신권 필요 없어요." 스마트폰 액정을 사이에 두고 세배와 세뱃돈이 오간다. 지난해 대구에서 설을 쇤 직장인 김한수(48) 씨는 서울에 있는 조카를 보기 위해 영상통화를 걸었다. "세배를 하라"는 큰아버지의 말에 조카들은 넙죽 세배를 했다. 김 씨는 "올해도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덕담을 건네면서 계좌를 통해 조카 2명에게 세뱃돈을 각각 10만원씩 송금했다. 김 씨는 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여조카에게 아이스크림까지 카카오톡 선물함을 통해 건넸다. 김 씨는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설이 훨씬 편해졌다고 했다. "조카의 계좌번호를 물어볼 필요 없이 바로 세뱃돈을 보낼 수 있어 편리하다"며 "이제 더 이상 세뱃돈으로 쓸 빳빳한 신권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했다. 김 씨는 계좌이체 덕분에 다른 친지 아이들의 '눈치'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계좌이체 세뱃돈은 1대 1 온라인 대화 공간에서 따로 전해주는 돈"이라며 "봉투를 보고 '얼마나 줬냐'는 질문을 받을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신권을 찾는 사람도 줄고 있다. 대구은행 박민수 계산동지점 부지점장은 "세뱃돈도 만원권에서 5만원권으로 바꿨다. 신권도 60대 이상이 많이 찾고 있지만 젊은층은 신권이든 구권이든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도 음식 장만=설 명절 때 앞치마를 두른 남자도 늘고 있다. 과거에는 남자가 부엌을 기웃거리면 남자답지 못하다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부모들도 아들을 주방으로 내몬 며느리를 꾸짖기도 했다. 최근 '요리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설 명절 풍속도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차례 음식 준비에 남자의 동참이 어색하지 않게 됐다. '요섹남'(요리를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란 말까지 등장할 정도니 주방에 선 남자의 모습은 이제 흉이 아니라 멋으로 받아들여진다. 정호기(42) 씨는 "예전 같으면 밤 깎기 정도나 했을 테지만 이제는 자진해서 프라이팬을 잡는다"면서 "함께 차례 음식을 준비하며 가족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아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사고방식 변화는 나이가 지긋한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 이화자(67·가명) 씨는 "몸이 힘들면 서로 불만을 갖기 마련"이라며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아들, 며느리랑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니 싸울 일도 없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졌다"고 말했다.
일부 가정에서는 아예 차례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학(41·가명) 씨 가족은 설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서울 큰집을 찾아가는 대신 곧바로 대전 현충원으로 향한다. 친지들과 현충원에서 만나 준비한 음식을 펼쳐놓고 성묘를 한 뒤 예약해둔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함께하며 회포를 푼다. 이 씨는 "차례를 안 하니 많은 식구 뒤치다꺼리를 안 해도 돼 힘도 덜 들고, 가족끼리 부딪치는 일도 없어 좋다"고 했다.
◆필수 중 필수 내비게이션=이제 귀성길 전쟁은 옛말이 됐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발전으로 정확한 안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티맵과 원내비, 카카오내비가 그 대표주자다. 이들 내비게이션 앱은 어떤 것을 사용해도 정확하게 길 안내를 돕는다. 티맵의 경우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정확한 안내시간이 가장 큰 장점이다. 원내비는 건물과 지형지물을 활용한 길 안내가 특징이다. 카카오는 선명하고 또렷한 음질과 목적지 주변 검색이 뛰어나다.
또 여행을 계획하는 이에게도 내비게이션 앱은 필수다. 운전 중에만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인근 맛집을 검색하거나 관광명소를 찾아보는 데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인수(43) 씨는 "최근 내비게이션 앱은 클라우드·빅데이터와 결합하면서 더 빠르고 정확한 길안내를 제공해 자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 사는 자식찾아 부모가 역귀성 =자식들의 귀성길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도시에 사는 자식집을 찾는 노부모들의 역귀성 행렬도 늘고 있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역이나 버스터미널에 가면 자식들의 집에서 명절을 쇠기 위해 보따리를 들고 역귀성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찬수(72) 어르신은 "자식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명절 때 복잡하게 이동하는 것보다 우리 부부가 서울로 가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명절 때면 서울로 간다"고 말했다. 이정자 (78) 할머니는 "지난해까지는 아들들이 대구로 내려왔지만 지난해 영감이 돌아가셔서 아예 서울 사는 큰 아들 집에서 차례를 지내려고 올라간다"고 했다.
이런 역귀성하는 이들을 위해 도로공사는 설을 전후한 다음 달 4~6일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고, KTX를 타고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역귀성하면 티켓값을 30∼40%까지 할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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