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신께
넝쿨 장미와 아카시아향이 온 누리에 은은하고 찬란한 아침 해가 환희의 봄을 노래하는 이 시각 이 세상 모든 신께 기도드립니다.
저를 질투하지 마십시오.
쌍둥이로 태어나 짝을 잃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척추를 다쳐 2급 지체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여섯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의사의 권익을 찾는 의권 투쟁을 하다 수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위암으로 위 절제수술을 받고 얼마 후 장 중첩증으로 소장 절제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릴 뻔도 했습니다.
키 158cm에 체중이 45kg밖에 되지 않는 자그만 체구로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칠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이 늙은이에게 찾아오는 환우들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찡그리고 왔다가 밝은 얼굴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지혜와 건강을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
가정에 평화를 주시고 두 아들이 활기차게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아내와 40년을 웃으며 바라본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년 3월 칠순 잔치 대신 미흡하나마 자그마한 시집 한 권으로 지인들께 그 동안의 은혜 갚게 하옵소서.
지금 이 순간 제 일생 가장 행복합니다.
신이시여!
이제는 더 이상 저를 질투하지 마십시오.
지는 해가 떠오르는 해보다 더 아름답다 했습니다.
하루를 아니 한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다
지는 해처럼 아름답게 사라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설령 내일 이승을 떠난다하더라도 밝은 미소와 맑은 눈빛으로 작별하게 하소서!
이 세상 모든 신이시여.
제발 더 이상 질투만을 하지 말아주시옵소서!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
신록의 계절 6월을 만끽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인가
어두운 기운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누나는 다짜고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입으려 하자 그때야 울음을 터트리며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다.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등교할 때만 해도 건강하시던 엄마가 돌아가셨다니….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신입생대표로 '' 신입생은 말 한다''는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기도 하고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함께 진학한 친구도 많아서 그야말로 꽃피는 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열세 살 꿈 많은 소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와서도 학교를 다녀와서는 무심코 ''엄마''하고 안방 문을 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따뜻한 양지 볕에서 엄마 무릎에 누워 귓밥을 파주는 사랑의 손을 만지며 어리광 피우던 호사는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고 웃는 일도 시들해지고 등교조차하기 싫어진 즈음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보다 더 큰일이 벌어졌다.
◆골목길
고향 집 골목길을 돌고 돈다
어디 정겹지 않은 골목길이 있을까마는
반백 년 흐른 후에 찾아온 골목길
자국 자국마다
켜켜이 쌓여있는 추억의 편린
술래잡기하던 친구들 웃음소리 가득하고
싸움박질 하던 친구들 고함에
새들은 달아나고
열일 곱 어린 나이에
엄마 영정 들고 울먹이며 걷던 형 얼굴
어리둥절 뒤따르던 동생 얼굴
아직도 떠날 줄 모르고
덩달아 나도 엉거주춤 머무는
애잔함이 짙게 묻어나는
그 골목길
◆아버지의 무단가출
엄마가 돌아가시고 미처 숨 고르기도 전에 아버지가 ''돈 벌어 올게''라는 지극히 간단한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무단가출을 하셨다.
졸지에 고아가 된 오 남매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오남매가 의논한 결과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명문 여고를 다녀 가정교사로 입주하고 형도 가정교사를 했지만 나와 쌍둥이 동생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던 막냇동생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학업의 끈은 놓을 수 없어 등교는 꼬박꼬박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몇 푼의 생활비로는 언제까지 견딜 수는 없었다.
◆잊지 못할 선생님
중2가 되자 집안 살림은 더 궁색해지고 등록금을 못 내고 결국에는 등교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비록 출석을 불리지는 않았지만, 꼬박꼬박 학교는 갔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점심시간에 무료급식으로 나오는 식빵 한 조각과 한 통의 우유를 얻어먹기 위해서.
연속해서 몇 번의 등교정지를 당하자 더는 배짱을 부릴 수가 없었다.
며칠을 결석 아닌 결석을 하자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다.
집안 사정을 이해한 선생님이 가시면서 선생님 호주머니에 있던 돈을 몽땅 주고 가셨다.
''힘내라. 살아 못할 일은 없다. 네 꿈인 육군사관학교를 가려면 일단 중학을 졸업해야지''라는 격려 말씀과 함께.
(4월9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늦깎이 인생' 2회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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