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1조원 가치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권 누구? 대법 판결 8년만에 재심할까

서울 한 법무법인 상주본 사건 일부 증인 위증 혐의 고소장 제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 씨. 고도현 기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배익기 씨. 고도현 기자

한 때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은 아직도 세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모두 끝났는 데도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다보니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56) 씨가 상주본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배 씨는 상주본 사건을 둘러싼 진실이 규명돼야 상주본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상주본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은 이미 8년 전 대법원 선고로 배 씨가 패소한 채 끝난 상황이어서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은 재심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사건을 재심청구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아 재심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서울의 한 유력 법무법인이 재심청구를 염두에 두고 상주본 사건 민사소송에 참여했던 일부 증인들을 상대로 위증 혐의로 대구고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배 씨는 2일 "최근 법무법인 대표변호사 등의 연락을 받고 만났고, 당시 민사소송 상대 측 증인들의 진술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에 공감했다"며 "법무법인이 지난달 26일 위증 혐의로 사실상 재수사를 요청하는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만약 재수사가 진행돼 민사소송에서의 위증이 밝혀진다면 재심청구 사유가 될 수 있으며, 이후 문화재청이 1조원 가치가 있다고 감정한 상주본의 진짜 주인을 다시 가리는 세기의 재판이 다시 성사될 수도 있다.

배 씨는 민사소송 후 진행된 형사소송에서 무죄로 절도 혐의를 벗은 만큼 민사소송이 다시 이뤄지면 진짜 소유주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그는 "상주본은 당시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모(2012년 사망) 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상주본이 조 씨의 골동품 가게에서 나왔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법원은 조 씨 주변 사람들의 거짓말을 근거로 조 씨 소유로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배 씨의 주장대로 현재 국가 소유(조 씨는 숨지기 전 국가에 기증했음)로 돼 있는 상주본이 배 씨의 것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시 소송(민사 재심청구)을 해 앞서 대법원 판결까지 난 민사소송의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

하지만 재심 사유는 한정돼 있고, 대법원의 판결을 번복하기도 쉽지 않다. 해당 법무법인이 재심청구가 가능하다고 보는 사유는 위증이다. 증인 및 감정인, 통역인의 거짓 진술 또는 당사자 신문에 따른 당사자나 법정대리인의 거짓 진술이 판결의 증거가 된 경우를 재심 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주본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란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 씨는 지난 2008년 상주본을 처음 공개하면서 문화재청에 감정을 의뢰했고 진품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던 중 갑자기 조 씨가 나타나 '자신의 집에서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 끝에 민사소송은 조 씨의 승소로 결론이 났다.

대법원은 조 씨가 배 씨를 상대로 "몰래 내 물건을 훔쳐 갔다"며 제기했던 물품인도청구소송과 관련, "해례본은 조 씨 소유임으로 돌려주라"고 2011년 5월 판결했다.

이 판결을 근거로 배 씨는 같은 해 2011년 8월 절도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조 씨는 2012년 5월 문화재청에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상주본 기증 약속을 했지만 배 씨가 소송에서 지고도 해례본을 내놓지 않아 국가 기증은 성사되지 못했다.

배 씨는 구속 1년 만인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고, 2014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민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소유권이 조 씨에게 있음이 최종 확인됐고, 조 씨가 숨지기 전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한 만큼 상주본 소유권은 문화재청에 있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법적으로 국가 소유여서 배 씨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배 씨는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가 특정인들을 위증교사하고 사건을 조작해 내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민사소송에서도 졌다"며 "지금 상태에서 상주본을 내놓으면 법적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어 그냥 가져가면 끝이고, 기증자도 조 씨가 된다. 일단 법적 소유권부터 찾은 뒤 당당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 일부에서는 "재심청구보다는 '상주본이 국가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에 법률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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