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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북한 통일부 장관'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당연한 소리지만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 공직자는 상대국과 '화'(和)해야지 '동'(同)하면 안 된다. 상대국의 정책과 여론, 국민 정서 등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해야지 그들을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당위성을 거스른 대표적 인물이 태평양전쟁 직전 주(駐)일본 미국대사였던 조지프 그루다.

그루는 일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이런 호감은 그의 대사 활동에 그대로 연결돼 일본 제국주의 팽창 저지라는 본국의 일본 정책과 엇나가게 했다. 태평양전쟁 발발 전 전쟁을 피하기 위한 미·일 외교 교섭에서 그는 항상 일본 편을 들었다. 거칠게 말해 중국 침략과 베트남 점령 등 일본이 만든 '현상'을 인정해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큰 틀에서 들어주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일본 편향은 태평양전쟁 종전 방식을 논의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에 명예로운 항복을 제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명예로운'의 내용은 천황제 유지였다. 이런 주장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선언문 초안에 반영됐으나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 직전 당시 국무장관 제임스 F. 번스의 이의 제기로 삭제됐다.

만약 그루의 주장대로 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항복 후 일본이 메이지 헌법을 폐기하고 정치제도를 민주화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게 일본 근·현대사에 정통한 미국 역사학자 허버트 빅스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빅스는 그루와 국무부 내 그 동조자들의 일본 편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군주제의 사회적 기반이 와해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히로히토 평전)

문재인 정권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그루에 비견할 만하다. 남한보다는 북한 입장에 충실하다. 최근 한 토론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억지력 강화'라고 '해설'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말대로라면 북한은 남한의 공격을 '억지'하려고 미사일을 펑펑 쏘아댄다는 것이 된다. 2년 전에 쓴 칼럼에서도 북한의 핵개발이 한국과 미국의 힘 과시의 결과라고 했다.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대한 북한의 주장이 바로 이렇다. 이쯤 되면 '북한 통일부 장관'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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