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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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훈 칼럼] ‘총선 민심’이라는 의회 독재 가짜 면허증

    [정경훈 칼럼] ‘총선 민심’이라는 의회 독재 가짜 면허증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서문의 첫 문장이다. 이를 22대 총선 이후 한국 정치 상황에 대입하면 이렇게 패러디할 수 있겠다. '하나의 유령이 여의도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총선 민심이라는 유령이'.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은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하는 자신들의 언행의 정당성을 '총선 민심'에서 끌어낸다.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도, 해병대 채 상병 특검·김건희 특검 추진도, 양곡법 개정안·민주유공자법 국회 통과도 '총선 민심의 명령'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이를 거부하면 '국민과 역사에 대한 거역'이라고 거품을 문다. 이런 정신 구조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은 개나 물어갈 말라비틀어진 뼈다귀에 지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위헌적"이며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은 단적인 예다. 대통령 거부권(법률안 재의 요구권)은 헌법(제53조 2항)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이게 어떻게 '위헌적'인지 모르겠다. 대통령 거부권은 1987년 개헌 때 '대통령 국회 해산권'의 삭제에 따른 행정부의 입법부 견제 기능 약화를 보완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이마저 없으면 현행 헌법하에서는 대통령과 행정부는 입법부, 구체적으로는 다수당의 집행부에 지나지 않는다. 야당이 추구하는 것은 이런 입법부 시녀로서의 행정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의회 독재'이다. 그런데 이는 '상식'과 배치된다. '국민'의 대표가 모인 의회가 어떻게 독재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당연한 것 같지만 근거 없는 맹신일 뿐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입법 폭주는 이를 잘 입증한다. 22대 총선에서도 175석을 얻었으니 다음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회 독재'는 '국민 다수의 집단지성(集團知性·collective intelligence)은 정의롭다'는 독단의 소산이다. 이는 참으로 위험하다. '정의로워서 다수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다수가 결정했기 때문에 정의롭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잠복해 있다고 경고한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논리 구조에서는 다수의 결정은 그 어떤 것도 정의롭고 무오류(無誤謬)이다. 민주당의 '총선 민심' 타령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생각의 연원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에 따르면 프랑스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자들의 초미의 관심은 국가 권력의 제한이 아니라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느냐'였다. 그들은 한 사람의 왕이나 소수의 귀족에게 집중된 정치권력을 국민의 집합적 의지로 대체하면 인간의 '자유'는 자동적으로 확보되며, 국민의 집합적 의지는 의회의 다수의 의지를 통해 수렴된다고 봤다. 그 논리적 귀결은 무제한적 의회 권력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의회는 국민의 의지를 대표하는 곳이니 의회의 권력을 제한할 필요도 없고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하에서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운 사법부 독립이라는 당위도 실상은 허구이다. 법관은 원칙적으로 독립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판결은 의회가 제정하고 의회가 필요한 경우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법을 기초로 이뤄진다. 물론 위헌 심판 같은 무분별한 입법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있긴 하다. 하지만 헌법도 의회 다수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만큼 현대 민주주의에서 의회 권력은 막강하다. 문재인 정권 이후 지금까지 한국 국회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 권력의 원천은 '국민의 뜻'이다. 그런데 그 국민의 뜻은 어떻게 확인하나? 말도 안 되는 법을 밀어붙이고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것이 총선 승리에 내포된 민심의 명령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그런 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역시 대선 승리에 내포된 민심의 명령이다. 어느 민심이 정확한 민심일까? 개개인의 국민은 있어도 100% 지지를 받지 않은 다음에야 전체로서의 국민과 국민의 뜻은 없거나 최소한 확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총선 민심'은 왜곡 과장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추상적인 가공물이자 의회 독재 합리화를 위한 가짜 면허증이다. '국민의 뜻'을 참칭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4-05-26 19:13:12

  • [정경훈 칼럼] 우리의 장미꽃은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나

    [정경훈 칼럼] 우리의 장미꽃은 다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나

    나치 독일 항복 후 승전국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탈나치화'였다. 그러자면 나치에 동조한 모든 독일인들을 공적 생활에서 추방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미국을 당황케 했다. 그 실상을 미 군정청장 루시어스 클레이는 이렇게 전한다. "우리 행정의 주된 난제는 상당히 유능한 독일인 중 어떤 식으로든 나치 정권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연루되지 않은 자를 찾는 일이었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공직자인 경우가 많았는데…그중 상당수는 나치당 활동에서 단순 가담자 수준을 뛰어넘었다."('포스트 워 1945~2005' 제1권, 토니 주트) 나치 가담과 동조는 범독일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 원인을 기술하려면 책 몇 권으로도 모자라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도덕적 자폭'이다. 히틀러는 집권 전부터 "유대인은 병균, 제거해야 할 존재"라고 했다. 집권 후 유대인을 어떻게 '처리'할지 예고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권력을 안겼다. 그리고 히틀러는 예고대로, 유대인 '훈증(燻蒸) 살균'을 실천에 옮겼지만 독일인들은 모른 체했다.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은 유대인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독일인들이 밤마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열차나 화차를 보고 들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저 빌어먹을 유대놈들은 밤잠마저 설치게 한다'고 투덜댔다."('모던 타임스Ⅱ', 폴 존슨) 사설이 길었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 총선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도덕적 무정부 상태의 징후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이를 압축해 보여 준다. 조국혁신당은 24.25%의 득표율로 12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다. 이 중 5명이 전과자 또는 피의자·피고인이다. 한 여론조사는 이들이 배지를 달 수 있게 된 이유를 보여 준다. 조국혁신당을 찍었다는 이들의 80.2%가 '조국 대표의 윤리의식이 약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윤리의식의 마비 말고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도 마찬가지다. 아니 윤리의식 마비가 광범위해 보인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당 대표는 정치범도 양심범도 아니다. 민간사업자에게 천문학적 이익을 안긴 대장동·백현동 비리 의혹을 포함해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잡범이다. 국민은 그의 '사당'(私黨)에 압도적 다수 의석을 안겼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과연 그럴까? 중우(衆愚)의 어리석은 선택은 아닐까? 이런 '승리'로 대표의 어떤 재판도 1심 선고가 다음 대선 전에는 나오기 어려울 가능성은 더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잡범이 2번이나 대통령을 넘보는 도덕적 아노미가 '뉴노멀'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 아노미는 이미 그 흉한 몰골을 드러냈다.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이대생을 미군 장교에게 성 상납시켰다는 김준혁 당선인의 주장을 '사실'로 만들려고 자신의 이모를 매춘부로 몬 것이 그렇다.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이모도 매춘부로 만드는 패륜이 그쪽의 도덕임을 현시(顯示)한다. 야당의 압승 제1 원인으로 좌파 언론부터 여당과 보수 언론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을 꼽는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보기 나름이다. 덴마크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이란 그림이 있다. 보기에 따라 꽃병일 수도, 마주 보는 두 사람의 옆얼굴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불통'은 '신념', '독선'은 '의지'일 수도 있다. 설사 그런 관점 이동을 인정할 수 없다 해도 '불통'과 '독선'이 야권 인사들의 도덕적 파탄에 눈을 질끈 감고 표를 몰아줄 만큼 더 큰 잘못인지는 의문이다. 1951년 영국 더 타임스는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전하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다. 그런 모욕을 딛고 우리는 장미꽃을 피워 냈고 그렇게 자부해 왔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실정(失政)과 비정(秕政)으로 점철됐던 문재인 정권 5년, 그럼에도 민주당의 21대 총선 압승, 대통령 거부권으로 간신히 버텨왔던 윤석열 정권 2년, 민주당이 압승하고 조국혁신당이 약진한 22대 총선은 이런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게 맞나? 장미를 쓰레기통으로 다시 던져 버린 게 아닐까?'

    2024-04-28 17:24:21

  • 대구 달성군행정동우회,비슬산 참꽃문화제맞이 자연정화활동

    대구 달성군행정동우회,비슬산 참꽃문화제맞이 자연정화활동

    대구 달성군행정동우회(회장 임충규)에서는 지난 3일 오전 비슬산에서 회원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쓰레기 수거 등 비슬산 참꽃문화제맞이 자연정화활동을 개최했다.

    2024-04-04 13:51:49

  • [정경훈 칼럼] 종북 세력 합법적 기생 공간으로 전락할 22대 국회

    [정경훈 칼럼] 종북 세력 합법적 기생 공간으로 전락할 22대 국회

    동서 냉전기 서독 정치는 동독의 손에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2년 4월 27일 사회민주당 소속 빌리 브란트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 부결이다. 당시 야당인 기독교민주당 총재 라이너 바르첼은 브란트 총리의 대(對)공산권 유화정책인 '동방정책'이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불신임 동의안을 냈다. 여야 모두 통과를 예상했다. 브란트의 사민/자민당 연합은 자민당 일부 의원의 이탈로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가결 선인 249표에서 2표가 모자란 부결이었다. 놀랍게도 바르첼의 기민/기독교사회당 연합에서 반란표가 나온 것이다. 서독 검찰의 수사 결과 기민당의 율리우스 스타이너 의원이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국가보안부)로부터 5만마르크를 받고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이는 오랫동안 기민/기사 연합 원내대표로 있었던 기사당의 레오 바그너로, 역시 슈타지로부터 5만마르크를 받았다. 바그너는 부인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슈타지의 해외 공작 책임자였던 마르쿠스 볼프는 독일 통일 후 기민당 의원들에게 1표당 5만마르크를 줬다고 확인해 줬다. 통일 후 공개된 '로젠홀츠'(장미 나무)라는 슈타지 문서에 따르면 바그너는 '뢰베'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비공식 협조자', 즉 '간첩'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소련은 1970년대 중반 서유럽을 겨냥해 신형 중거리 핵미사일 SS-20(소련 명칭은 RSD-10)을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에 배치했다. 이에 대응해 사민당 소속 헬무트 슈미트 당시 서독 총리는 발사 7분 만에 모스크바에 떨어지는 미제(美製) 퍼싱Ⅱ 핵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결정했다. 이것 말고는 서독 안보를 지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재래식 전력에서 NATO(28개 사단, 탱크 6천500대)는 바르사뱌조약군(58개 사단, 탱크 1만9천 대)에 상대가 안 됐다. 그러나 서독에서는 SS-20 배치에는 눈감은 채 미제 미사일 배치는 안 된다는 거센 반대 시위가 일었고 서독 의원들은 이에 뇌동(雷同)했다. 그리고 슈미트 총리는 자당(自黨) 좌파 의원의 미제 미사일 배치 반대표에 밀려 사퇴해야 했다. 이런 '안보 자해'의 비밀은 통일 후 드러났다. 이 시기 서독 하원의원 중 최소 25명 이상이 동독의 돈을 받은 간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브란트 불신임 투표 부결을 노리고 서독 의원들을 매수하려 했던 사민당 원내총무 칼 비난트도 있다. 그가 '슈트라이트'라는 가명으로 간첩 활동을 하며 동독에서 받은 돈은 100만마르크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22대 국회도 이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 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 의원 공천에서 종북·반미 세력이 당선 안정권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정당 판결로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 몫의 정혜경·전종덕·손솔 등이 각각 5, 11, 15번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경기동부연합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 통진당, 민중당 등에서 활동했다. 또 반미(反美) 친북(親北) 성향 인사가 참여한 '연합정치시민사회'에서 추천한 '국민 후보'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한 이주희 변호사도 당선 가능권인 17번을 받았다. 이들이 국회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이 이들에게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들이 외교통일위, 정보위, 국방위 등에 배치될 경우 문제는 특히 심각해진다. 우리 안보와 직결된 국가 기밀의 지속적·심층적 누설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원 1인당 9명인 보좌진도 종북주의자로 채워질 수 있다. 이석기 사건을 수사한 전 국정원 수사관에 따르면 이석기 보좌진은 모두 통진당 내 RO(지하혁명조직)의 핵심 간부들이자 대부분 국보법 위반자들이었다. 비례 당선 안정권 4명만 기준으로 해도 36명의 종북주의자가 추가로 국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저지하려면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종북·반국가 세력의 국회 진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 그런 점에서 4·10 총선은 우리가 현민(賢民)인지 우중(愚衆)인지를 자문케 하는 실존적 물음이다.

    2024-03-31 18:57:23

  • [야고부] NLL 협상 대상 아니다

    [야고부] NLL 협상 대상 아니다

    국민의힘이 대구 중남구에 전략공천한 김기웅 후보는 노무현 정부 통일부 평화체제팀장이던 2007년 국정 브리핑 기고문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우리 측이 일방적으로 설정"이라며 "애초부터 남북 간에 큰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배치된다. NLL은 마크 클라크 UN군 사령관, 북한 김일성,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서명한 6·25 정전협정문에 근거한 해상(海上) 휴전선이다. 우리 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게 아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가 정전협정문 등 여러 기록물을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NLL은 정전협정문에 들어 있는 지도에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확정 후 UN군 사령부가 공산 측에 정식 통보했고 공산 측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쟁 전인 1950년 6월 24일 남한 통제하에 있었으나 정전협정 당시 북한이 차지하고 있었던 옹진반도 인근의 기린도, 선위도 등 38도선 이남의 도서(島嶼)들이 북한에 양도되는 등 NLL이 북한에 유리하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것은 UN군과 북한·중국이 군사분계선을 그으면서 육상에서는 '소유한 대로 소유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해상에서는 일부 지역은 '소유한 대로 소유', 다른 지역은 '전쟁 전 상태로 복귀'라는 북한 주장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에 북한은 고마워했다고 한다. 이후 북한은 1973년 10월부터 두 달간 NLL을 40여 회 이상 침범한 '서해 사태' 때까지 NLL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남북의 경계선과 구역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구역으로 한다'고 제11조에 명시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서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NLL 무력화를 기도했다. 1973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연해(沿海)의 권리를 주장하며 처음 NLL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어 1977년 7월 '200해리 경제수역', 8월 '해상군사경계선', 1999년에는 새로 설정한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런 무력화 기도에 진보 좌파는 맞장구를 쳐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괴물'이라고 했다. 김 후보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김 후보가 호국·보수의 심장 대구의 '국민의 대표'로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2024-03-21 18:19:31

  • [야고부] 김정은의 로봇

    [야고부] 김정은의 로봇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후 스탈린의 대(對)파시즘 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나치는 박멸의 대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이를 나치에게 보증하기 위해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독일 공산주의자들을 나치로 넘겼다. 그 수는 무려 800명에 이른다. 그리고 프라우다를 비롯한 선전 기관의 기사나 성명에서 파시즘에 대한 공격은 물론 파시즘이란 표현 자체가 사라졌다. 이어 세계 각국 공산당에 독소불가침조약은 평화를 위한 결단이라고 선전하고, 파시즘 공격을 중단하고 나치 독일에 맞서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를 '전쟁 도발자'로 비난하라고 지시했다. 소련 밖의 공산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당혹해했지만 곧바로 소련의 새로운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세계 공산당의 국제적 조직체인 코민테른은 독소불가침조약이 "히틀러에 대한 서방의 유화책 앞에서 소련에 열린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하자 모스크바 방송을 통해 프랑스군에 나치에 저항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소련에 망명한 독일 공산당의 아부는 더 낯 뜨거웠다. 독소불가침조약은 '국제적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소련의 평화 행위가 거둔 결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중심 인물로 훗날 동독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발터 울브리히트는 특히 더했다. "소비에트연방과 독일의 조약은 독일 파시즘을 소비에트연방의 발아래 두는 것으로, 세계 노동계급을 지지하는 것이며 소비에트연방을 둘러싼 거짓말과 모순된다." 국내 종북 단체 수장 역할을 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 본부의 행태가 딱 그 꼴이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 추진 기구를 모두 해산하라는 방침을 내리자 자진 해산하고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운동 방향을 '통일'에서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 '반제자주'(反帝自主)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의에 대한 배신이었던 독소불가침조약을 찬양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스탈린 맹종(盲從)을 빼다 박았다. 가히 김정은에 조종당하는 로봇이다. 좌파는 이런 자들이다.

    2024-03-06 20:00:06

  • [정경훈 칼럼] 좌파가 이승만에게 씌운 누명, ‘분단의 원흉’

    [정경훈 칼럼] 좌파가 이승만에게 씌운 누명, ‘분단의 원흉’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객이 2일 107만명에 이르렀다. 이런 상업적 성공은 '진실 투쟁'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 투쟁'을 통해 좌파가 이승만에게 씌운 누명들을 벗겨낸 것이다. 그런 누명들 모두가 비열하지만 '분단의 원흉'이란 누명은 특히 비열하고 악의적이다. 그게 거짓임은 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북한 정권의 산파는 소련이다. 일본의 항복 후 북한에 군을 진주시킬 때부터 소련은 미국처럼 한반도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스탈린이 1945년 9월 20일 극동전선군 총사령관 A. M.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 군사회의에 내린 '북한에 반일적인 민주주의 정당 및 조직의 광범위한 블록을 기초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이다.('세번의 혁명과 이승만', 오정환)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이다. 이런 구상하에 소련은 1945년 10월 28일 "북한을 별도의 국가로 만들려는 첫걸음"('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으로 평가되는 '오도행정국'(五道行政局)이란 중앙행정기관을 창설한다. 이를 시작으로 북한 단독 정권 수립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설립됐다. 위원장은 김일성, 부위원장은 '연안파'인 김두봉, 서기장은 김일성의 외가 쪽 할아버지뻘 되는 강양욱이 됐고 각료에 해당하는 국장급 14명 중 상업국장과 보건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산주의자였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정부가 수립된 것은 1948년 9월 9일이지만 이미 이때 실질적인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이를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경축 대회' 사진(1948. 2. 8)으로, 윗부분이 찍히지 않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찍힌 부분의 문구는 "~회(會)는 우리에 정부(政府)이다"이다.([북한] 8·15해방 1주년 기념 중앙준비위원회, '8·15해방 1주년 기념 북조선민주주의 건설 사진첩').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우리의 정부이다'라는 것으로, 정부가 수립됐음을 공표한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북한 연구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가 이때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정권이 탄생했다"고 한 이유다. '임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북한 단독 정권 수립을 감추려는 위장술이었던 것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명실상부한 정부 조직을 갖추고 정부 기능을 수행했다. 2월 9일 국가 건설의 기본 방향을 담은 11개조 당면 과업을 발표했고, 3월 5일 지주를 민간인에서 정부로 바꾸는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 같은 달 23일 국가 건설 정책을 구체화한 '20개 정강(政綱)'을 공표했다. 이 모든 것이 좌파가 이승만이 '분단의 원흉'인 증거로 드는 1946년 6월 3일 이른바 '정읍발언'보다 수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남한은 어떤 유형의 정치적 제도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 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소련이 "통일 임시정부는 모스크바 삼상(三相)회의 한반도 신탁통치 결정을 지지하는 정당과 사회단체를 망라한 대중단체의 토대 위에서 수립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탁(反託)인 우익을 빼고 찬탁(贊託)인 좌익 세력만으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에 구축된 김일성의 '민주기지'를 발판으로 남북한을 아우르는 '붉은 임시정부'를 세우겠다는 속셈이었다. 이에 미국이 반대하면서 1차 미소 공위는 1946년 5월 6일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한반도 분단이 고착된 것은 사실상 이때로 정읍 발언보다 한 달이 앞선다. 북한에는 이미 정부가 들어섰고 통일 정부 수립이 불가능해진 이런 상황에 맞서 남한만이라도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세계 여론에 호소해 북한에서 소련을 몰아내자는 것이 정읍 발언이다. 1947년 5월에 열린 2차 공위에서도 소련은 기존 입장을 고수해 결국 결렬됐다. 정읍 발언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놓치면 좌파의 주장대로 '남한 단정론(單政論)'이다. 그러면 좌파는 그 시대적 배경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분단의 원흉'은 악랄한 허위 선전이다. 진짜 분단의 원흉은 소련과 김일성이다.

    2024-03-03 16:04:51

  • [야고부] 중국의 거짓말

    [야고부] 중국의 거짓말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은 1954년 4월 미국이 1952년 1월 말부터 비밀리에 세균전을 펴 왔다고 주장했다. 감염된 파리, 모기, 거미, 개미, 빈데, 이, 벼룩, 잠자리, 지네 등을 살포해 온갖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만주가 주 표적이었지만 남쪽의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가 표적이 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1952년 2월 처음 나온 이런 주장은 생포된 미군 조종사가 중공 주장대로 자백하고 영국의 유명한 생화학자인 조지프 니덤이 현지 조사 후 펴낸 '한국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에 관한 국제과학위원회의 사실 조사 보고서'(일병 '니덤 보고서')에서 중공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면서 사실인 것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니덤이 증거라고 수집한 것은 병에 걸린 들쥐 한 마리가 고작이었다. 무엇보다 혹한에는 감염된 벌레를 살포해도 바로 얼어 죽어 질병이 퍼질 수가 없다는 점에서 중공의 주장은 난센스였다. 6·25전쟁 후 중국에서 나온 증언도 중공의 주장을 부인한다. 6·25전쟁에 참여한 중공군 의무 책임자였던 우즈리(吳之里)는 2013년에 공개된 회고록에서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는 주장은 '가짜 정보'였다고 고백했다. 또 6·25전쟁 때 중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었던 황커청(黃克誠)도 1986년 사망 전 우즈리와 대화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에서 세균전을 벌이지 않았다. 이제 양국(미·중) 관계가 나쁘지 않으니 그 문제에 관해 계속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소련은 이미 이를 알고 있었다. 정보기관의 보고를 바탕으로 소련 공산당 중앙위는 1953년 5월 2일 비밀 결의서를 채택해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보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소련 정부와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잘못 알았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세균전 무기를 사용했다는 보도는 명백히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것이다."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가 '가짜 정보'를 다시 우려먹고 있다. 21일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微信) 공식 계정에서 "1951년 적은 조선의 전쟁터와 중국 동북 지역에서 세균전을 진행했다"며 중국 공산당의 지하조직인 '은폐 전선'이 "적의 세균전 실시 음모를 제때 파악해 신화통신을 통해 알려지게 했고, 국제사회에 적의 잔혹한 행위를 폭로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말 그대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2024-02-22 19:02:37

  • [야고부] 이승만 복권(復權)

    [야고부] 이승만 복권(復權)

    "남북 분단 조장. 국민 모두가 38선은 임시 조처이고 곧 통일한다고 믿었는데 이승만은 일찌감치 1946년 6월 '정읍 발언'으로 남북 분단을 기정사실화하고 결국 반쪽 정권을 장악했다. 미국조차도 생각하지 않던 남한 단정으로 몰고 감으로써 6·25전쟁과 남북 분단, 대립을 가져오는 단초를 제공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가 지난해 11월 한 일간 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다. '이승만=남북 분단의 원흉'이라는 좌파의 프레임을 답습하고 있다. 남북 분단의 원인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읍 발언'을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한반도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가 양측의 대립으로 무기 휴회(休會)돼 통일 정부라는 우리의 염원 실현이 멀어지고 있어 남한에 임시정부를 세워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뒤 북한에서 소련이 물러나도록 해야 한다.' 좌파들은 이를 '남한 단정론(單政論)'으로 몬다. 이승만이 북한보다 먼저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했다는 것이다. 비열한 거짓말이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 소련 극동전선군 총사령관 바실레프스키와 연해주 군관구에 북한에 단독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10월 8일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열려 '북조선 중앙은행 설립'을 결정했고 28일에는 중앙행정기관인 '북조선 5도 행정국'이 만들어졌다. 이런 북한 단독정부 수립 작업은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위원장, 김두봉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수립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가 정읍 발언 4개월 전이었다. 북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던 것이다. '인민위원회' 앞에 '임시'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분단 책임을 가리려는 속임수였다. 대한민국 건국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한 역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첫 주말 관객 3만5천 명을 돌파해 박스오피스 4위에 올랐다고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관객 후기가 "교과 과정에서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공과가 있는데 과 때문에 공까지 부정당하는 것은 안타깝다" 등 호평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승만이 자유 대한민국 건국 영웅으로 속히 복권(復權)되기를 기대한다.

    2024-02-06 18:55:14

  • [정경훈 칼럼] 민심은 ‘천심’(天心)? 천심다워야 천심이다

    [정경훈 칼럼] 민심은 ‘천심’(天心)? 천심다워야 천심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는 자유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1930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2당이 됐을 때 당시 하인리히 브뤼닝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바이마르 민주주의'가 만개한 당시 독일의 현실에서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서는 권력을 잡을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이런 원칙에 기대 행동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민주주의를 파괴해 버렸다. 히틀러는 물리력으로 정권을 잡지 않았다. 정권 장악 과정에서 폭력이나 강압으로 국민을 위협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거로 정권을 잡았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 그를 권좌에 올린 것이다. 일단 정권을 장악하자 히틀러는 독일 민주주의를 압살해 버렸다.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권좌에 오른 후 3월 23일 입법권과 헌법 수정 권한을 의회에서 정부로 이양하는 '민족과 국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법', 일명 '수권법'(授權法)이 우파와 중도파의 찬성에 힘입어 의회를 통과하고 6월에는 나치당이 유일한 합법 정당이 됐다. 히틀러가 독일 민주주의를 완전히 박살내는 데 5개월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 원동력은 독일 국민들의 침묵이었다. 이를 두고 나치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한 오스트리아 출신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준 이들은 하녀들뿐이었다. 물론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런 사실은 "모든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경구(警句)의 섬뜩한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이 말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한 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18세기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접경에 있던 사보이아 공국의 외교관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것이다. 메스트르는 프랑스혁명에 반대하고 절대왕정을 지지한 반동주의자였다. 그래서 이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해도 이 말이 폐기 처분돼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의 수준은 국민 수준이 결정한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민 94.5%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10명 중 8명이 못 먹어 체중이 감소하는 '비자발적 다이어트'를 강요당한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좋은 예다. 그 비극은 구제 불능의 포퓰리스트 차베스와 마두로를 선택한 국민의 '수준'이 초래한 것이다. 우리도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소주성, 탈원전, 반기업·친노조, 울산시장 선거 공작, 정부 범죄 검찰 수사팀 학살, 폭등한 집값이 폭등하지 않은 것으로, 악화된 분배를 개선된 것으로 분식(粉飾)한 통계조작 등 실정(失政)과 비정(秕政)으로 점철됐던 문재인 정부다. 그렇게 뜨거운 맛을 봤으면 정신 차릴 법도 한데 그렇지 못했다. 심판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침에도 국민은 21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에 개헌 말고 못 할 것이 없는 180석을 몰아줬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절대다수 의석을 망나니 칼 삼아 '의회 독재'로 폭주하지 않았나? 정권이 바뀐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의회 독재에 맞서 법률안 거부권을 4차례나 행사해야 했다. 그럼에도 패륜적 언행으로 인성(人性)을 의심받고, 7개 사건 10개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의 사당(私黨)이란 소리를 듣는 정당은 그 나름 견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일하는 척하고 그들은 임금을 주는 척한다'는 구소련 농담이 있다. 위선이 판을 치는 '사회주의 천국'의 실상을 비꼰 것이다. 지금의 현실을 이에 빗대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척하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척한다.' 이런 착각과 위선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 기회가 4월 총선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가 만족 못 할 수준에서 횡보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기대만큼 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야당의 발목 잡기도 한몫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정권 심판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민심은 천심(天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심'다워야 '천심'이다. 국민의 어떤 선택이든 무조건 천심일 수는 없다.

    2024-01-28 16:14:38

  • [야고부] 불멸 강요당하는 레닌

    [야고부] 불멸 강요당하는 레닌

    1953년 사망한 스탈린의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묘에 레닌 시신과 합장됐으나 1961년 제22차 소련 공산당 대회 후 레닌 곁에서 사라졌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당시는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던 흐루쇼프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인데 당 대회가 끝날 무렵 1903년 볼셰비키에 가담했던 나이 든 여성이 연단에 올라 전날 밤 꿈 얘기를 했다. 레닌이 현몽(現夢)해 "나는 스탈린 곁에 누워 있는 것이 싫다. 스탈린은 너무나 많은 불행을 우리 당에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각본에 따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해서 스탈린 시신을 레닌 묘에서 들어내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유물론(唯物論)을 웃음거리로 만든 결정이었다. 그날 밤 스탈린 시신은 크렘린 뒤 구덩이에 던져졌고, 시신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뒤 화강암 판으로 덮었다고 한다. 레닌처럼 시신이 영구 보존되기를 원한 스탈린의 소원은 이렇게 날아갔다. 레닌의 바람은 스탈린과 달랐다. 죽기 전 자신의 시신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어머니 묘 옆에 묻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1924년 이를 무시하고 방부 처리해 영구 보존키로 결정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에 따르면 이런 결정에는 레닌이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현세(現世)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레닌의 장례위원회 명칭부터 '불멸화위원회'였다. 레닌의 묘가 정육면체 구조물이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레닌 묘를 설계한 A. V. 슈셰프는 불멸화위원회 회의에서 "건축에서 정육면체는 영원을 의미한다. 레닌을 기념할 묘를 정육면체에서 끌어오자"고 제안했고 불멸화위원회는 이를 채택했다. 소련 공산당은 1973년 당 문서를 갱신하면서 레닌의 당원증부터 재발급했는데 이 역시 '레닌 불멸'이라는 기괴한 공산주의 주술(呪術)의 발로다. 레닌 사망 100주기를 맞아 러시아에서 그의 시신을 매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런 제안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여러 차례 나왔고 찬성 의견도 높았으나, 레닌 시신은 여전히 붉은 광장의 묘에 '전시'돼 있다. '불멸'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는 레닌의 바람이 이뤄질지 관심이다.

    2024-01-24 20:11:04

  • [야고부] 북한 사회주의의 실패

    [야고부] 북한 사회주의의 실패

    1917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았지만 레닌은 고민이 많았다. 적백(赤白) 내전을 거치며 산업은 황폐화됐고, 이를 회복하지 못하면 볼셰비키 권력의 정당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도시와 농촌의 단절도 큰 골칫거리였다. 혁명이 시골 지역으로 침투하지 못해 반(反)혁명의 기반으로 이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닌이 들고나온 것이 '전(全) 러시아의 전기화(電氣化)'이다. 전국을 전기로 연결시켜 현대적 산업 기반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농촌에 만연한 무지, 침체, 가난을 몰아내 혁명을 완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21년 12월 출범한 것이 '고엘로'(GOELRO·러시아전기화위원회)이다. 여기서 마련한 전기화 사업 계획은 소련 경제 발전을 위한 첫 5개년 계획으로, 이후 소련의 경제 계획 당국인 고스플란(Gosplan·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의 원형이 됐다. 그 목표는 러시아 전역을 8개 지역으로 나눠 10개의 대형 수력발전소와 전기로 가동되는 대규모 공장을 포함한 30개의 지역 발전소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소련은 1931년에 계획이 달성됐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성과는 당초 계획에 크게 못 미쳤다. 목표로 정한 10개 수력발전소 중 1930년까지 건설된 것은 3개에 그쳤다. 이 계획으로 소련 발전량이 크게 늘긴 했지만 '전 러시아 전기화'는 실현되지 못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지난해 말 평양을 출발해 함경남도 금골로 향하던 열차가 급경사를 넘던 중 기관차 견인기 전압 부족으로 뒤로 밀리다 전복돼 수백 명이 사망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AF)이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16일 보도했다. 국정원은 이를 확인도 부인도 않지만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전한다. 북한의 전력난은 심각하다. 북한 지역은 평양 주변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암흑이고, 남한 지역은 밝은 불빛으로 가득 찬 한반도 야경 위성 사진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레닌은 고엘로 승인 1년 전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권력 더하기 전국의 전기화이다"('우리의 국내외 지위와 당의 임무')라며 사회주의 완성의 2대 요건의 하나로 '전기화'를 꼽았다. 레닌의 기준으로도 북한 사회주의는 실패한 것이다.

    2024-01-22 05:00:00

  • [야고부] 적 의도의 오판

    [야고부] 적 의도의 오판

    1941년 독일의 소련 기습을 가리키는 정보는 넘쳐났다. 독일 정부 내에서 암약하던 '붉은 오케스트라'라는 반(反)나치 그룹이 그런 정보를 보냈고, 증조부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친구로, 독일 신문의 일본 특파원으로 위장한 소련 간첩이었던 리하르트 조르게가 도쿄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정보를 빼내 침공 날짜를 실제 침공 날짜(6월 22일)와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6월 20일로 찍어줬음에도 스탈린은 믿지 않았다. 독일과의 상호 불가침조약을 철석같이 믿은 데다 독일이 이를 파기하더라도 영국을 패퇴시키기 전까지는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란 망상(妄想)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련 침공은 히틀러의 일관된 계획이었다. 히틀러는 소련을 독일인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활공간) 즉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1927년 '나의 투쟁'에서 밝힌 이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유대교의 속죄일(욤키푸르)에 발발했다고 해서 욤키푸르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4차 중동전(1973년 10월 6~25일) 초반에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도 안이한 정보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1971년부터 전쟁을 공언(公言)했고, 실제로 1971년부터 이집트는 전략 요충지로 병력을 지속적으로 집결시켰다. 이집트의 기습을 경고하는 정보 보고가 줄을 이었으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믿지 않았다. 기습 당일인 10월 6일에도 그랬다. 새벽 4시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이 이날 일몰 무렵 이집트와 시리아가 양면에서 공격할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이스라엘 정부는 무시했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 두 사람이 북한 김정은의 잦은 '전쟁' 언급이 허세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과 미국은 김정은이 한미동맹의 강력한 억지력 때문에 소규모 도발은 할 수 있으나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란 생각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런 믿음에 집착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 여러 전쟁에서 적의 의도를 오판해 재앙을 초래한 사례가 숱한 만큼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계에는 많은 인적·시간적·물적 비용이 들어가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2024-01-14 18:53:57

  • [야고부] 민주당 의원들의 무지

    [야고부] 민주당 의원들의 무지

    이데올로기에 함몰되면 '사실'을 거부한다. 유기체는 외적 환경 조건에 따라 처음의 고유한 특성을 잃거나 새로운 형질을 획득하게 되고 이것이 유전된다는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의 주장을 1948년 당의 공식 이론으로 채택한 소련이 대표적이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을 부인한 것이지만 소련의 '정설'이 됐던 것은 교육과 훈련으로 '소비에트형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스탈린의 의지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병적 외국 혐오증에서 비롯된 '국뽕' 이데올로기도 1940년대 후반 소련을 휩쓸었다. 라디오 발명자는 러시아의 알렉산더 포포프이며, 백열등도 러시아의 알렉산더 로디긴, 증기기관도 러시아의 이반 폴주노프, 비행기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표도로비치 모자이스키가 처음 발명·제작했다고 했다. 모두 사실(史實)과 어긋나는 억지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못지않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해양 방류는 인체와 해양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내자 이재정 의원은 'IAEA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문제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틀린 소리다. IAEA 헌장 제3조는 '원자력 안전 및 핵 안보 증진-건강을 보호하고 생명이나 재산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 기준 설정 및 개발'을 IAEA의 기능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 사전 검증은 여기에 정확히 부합한다. 양이원영 의원도 지지 않았다. IAEA가 유엔 산하 기구가 아니라고 했다. '팩트'는 'IAEA는 1957년 설립된 유엔 산하 독립 기구이다'(국가기록원)이다. 모두 반일(反日) 이데올로기 함몰이 빚은 무지이다. 그 무지의 기록에 새로 하나가 추가됐다. 8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가 "북한의 핵·미사일의 확장을 억제하자는 전략"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확장 억제는 미국의 억지력을 동맹국에게 확대 적용해 북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것으로 '북핵 확장을 억제한다'는 게 아니라 '한미의 억지력을 확장한다'는 개념이다. 조 후보자가 "잘못 알고 있다"고 하자 김 의원은 "후보자가 잘못 알고 있다"고 우겼다. 실소가 나온다.

    2024-01-11 19:59:27

  • [야고부] 이재명 vs 트럼프

    [야고부] 이재명 vs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백악관에서 근무했던 여성 참모 3명(알리사 파라 그리핀 전 백악관 공보국장, 사라 매튜스 전 백악관 부대변인, 캐시디 허친슨 전 백악관 보좌관)이 지난달 31일 방영된 A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의 재집권은 민주주의의 종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이전과 대통령으로 있을 때 보여준 거짓말 행진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트럼프는 입만 떼면 거짓말을 뱉어냈다. 팩트체크 사이트인 '폴리티팩트'에 따르면 2016년 선거운동 기간 중 트럼프의 공식 발언의 69%가 거짓말이었다. 폴리티팩트는 그중 21%를 '대부분 거짓', 33%를 '거짓', 15%를 '새빨간 거짓'으로 분류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거짓말 행진은 계속됐다. 워싱턴포스트 집계에 따르면 임기 종료 때까지 무려 3만573번이나 거짓말을 했다. 미국 국민을 지속적으로 속인 것이다. 그럼에도 재선이 유력시된다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개인의 윤리적 타락을 넘어 전체주의의 전조일 수 있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지적이다.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진작에 이를 경고했다.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 우리도 다를 것이 없다. 아니 더 심각하다. 아렌트는 사실과 허구,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판단력의 무능을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 팬덤은 판단력을 자발적으로 마비시키고 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팬덤이 '묻지 마'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현상은 이런 의심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그는 대장동 비리는 측근인 정진상이 한 일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도 이화영이 독단적으로 한 일이며, 민간 사업자에게 천문학적 이익을 몰아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도 국토부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한다. '거짓말'이란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이런 말들을 뱉어낼 수 있는 것은 특정 정치인의 말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기로 작정한 극성 지지층의 팬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4-01-03 20:03:43

  • [야고부] 정의찬의 배짱

    [야고부] 정의찬의 배짱

    기자는 지난 22일 이 지면을 통해 얄타회담에서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를 소련에 넘겨주도록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결정적 자문을 한 앨저 히스가 소련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원 '비미(非美)활동위원회'에서 주장했다가 위증죄로 처벌받은 사실을 소개했다. 히스가 간첩죄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소멸 시효(時效) 만료 때문일 뿐 간첩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히스는 1957년 '여론의 법정에서'라는 회고록을 시작으로 죽을 때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여기에 미국 좌파들이 호응하면서 히스의 '무죄'는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한 하원 의원의 발의로 1995년 7월 미국 정부가 '베노나(Venona) 프로젝트' 문서를 공개하면서 히스의 거짓말이 들통났다. 베노나 프로젝트는 1943년 스탈린이 히틀러와 별도의 강화조약을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돌자 미 군사정보국의 카터 클라크 대령이 착수한 소련 암호 교신 감청·해독 기밀 작전이다. 클라크 대령은 이 작전을 루스벨트나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는데, 좌파를 요직에 기용했던 그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문서는 놀라웠다. 재무부 고위 관료로, 2차 대전 종전 후 독일에서 화폐 대신 쓸 미군 군표(軍票) 인쇄용 동판을 소련에 넘겨 미국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해리 덱스터 화이트,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가 사형된 로젠버그 부부 등 간첩 혐의를 받았으나 결백을 주장한 인물들이 모두 소련 스파이로 확인된 것이다. 그 대열에는 히스도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무 특보인 정의찬의 거짓말이 딱 그 꼴이다. 그는 조선대 총학생회장 때 민간인 이종권 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구타해 사망케 한 사건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민주당 공직 후보 심사에서 탈락하자 "(사건) 현장에 없었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 내용이 공개되면서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렇게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그나마 히스의 거짓말은 탄로 나기까지 40년 이상이 걸렸지만 정 씨의 거짓말이 버틴 시간은 2주도 채 안 됐다.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2023-12-28 19:38:44

  • [야고부] 좌파들의 거짓말

    [야고부] 좌파들의 거짓말

    1949년 6월 1일 미국 전역의 지대한 관심 속에 '앨저 히스 재판'이 열렸다. 앨저 히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가 폴란드를 위시한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에 넘겨주는 데 결정적인 자문을 한 소련 스파이였다. 그와 함께 간첩 활동을 했으나 전향한 휘태커 체임버스가 히스의 정체를 폭로하자 히스가 명예훼손으로 휘태커를 고소하면서 시작된 이 재판에 앞서 히스는 미 하원의 '비미(非美)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 출석해 '스파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휘태커는 결정적인 물증을 제시했다. 이른바 '호박 문서'(Pumpkin Papers)로, 휘태커가 속을 파낸 호박 속에 숨겨둔 해군과 국무부의 극비 문서 마이크로필름이었다. 이는 휘태커가 미국 공산당과 결별하기 오래전부터 히스 등 미국 간첩이 자신을 통해 소련 공작원에게 넘겨준 문서들로 그중 최소한 세 건의 출처는 히스였다. 그 문서는 히스의 장인이 히스의 부인인 딸에게 준 타자기로 작성된 것이었다. FBI가 히스의 장인이 그 타자기로 작성한 문서를 찾아내 호박 문서와 활자를 대조한 결과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빼박' 증거에도 히스는 거짓말로 일관했다. "나도 놀랍습니다. 휘태커 체임버스가 어떻게 내 집에 들어와 내 타자기를 썼는지, 나는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겁니다."('반역', 앤 코울터) 이후 미 하원의 고발로 히스는 위증죄가 인정돼 5년형을 선고받고 감형돼 44개월을 복역했다. 보복 운전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경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의 행태가 이를 빼다 박았다. 최초 경찰 조사 때는 "내가 운전은 했지만 급정거는 안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한 달 뒤엔 "대리운전 기사가 운전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리운전 영수증 등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법원은 이 부대변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대변인만 그런 게 아니다. 국내 좌파들은 거짓말이 입에 달렸다. 민주당 식구들은 그 대표 주자라 할 만하다. 김남국 의원, 최강욱 전 의원,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이 그렇고 구속된 송영길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2023-12-21 20:01:13

  • [야고부] 맥아더 끌어들인 이인제

    [야고부] 맥아더 끌어들인 이인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미국이 배출한 군인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힌다. 그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다. 미 역사상 최다인 22개의 무공훈장에 육군사관학교 수석 졸업, 최연소 육사 교장, 최연소 육군 소장, 최연소 육군 대장,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5성 장군인 육군 원수에 올랐다. 1937년 전역했으나 2차 대전 발발로 루스벨트 대통령이 현역으로 복귀시켰다. 그의 군사적 재능이 다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1941년 7월 26일 육군 소장으로 복귀해 다음 날 중장, 12월에 대장으로 승진해 태평양전쟁을 지휘했고 마침내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 서명을 받아냈다. 그의 이력의 절정은 우리 입장에서는 태평양전쟁 승리보다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더 꼽을 수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확률은 5천분의 1이었다. 인천의 조수 간만의 차는 최고 9.7m로 미국 메인주의 펀디(Fundy)만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고, 썰물 때 항구는 개펄로 변해서 배가 움직일 수 없었다. 상륙작전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해군 장교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상륙작전 교범의 모든 기준에 위배된다며 반대했는데 그럴 만했다. 당시 J. 로턴 콜린스 육군 참모총장도 작전에 장애가 되는 자연적 취약점도 없고 부산의 군수기지와도 가깝다며 군산을 추천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희(古稀)가 넘었다. 당적을 여러 번 옮기며 6선에 성공, '피닉제'(불사조+이인제)라는 별명이 붙은 이인제 전 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많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사령관으로 참전했을 때가 71세"라고 반박했다. 이 전 의원은 1948년생으로 올해 75세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맥아더의 업적은 말 그대로 불후(不朽)다. 이 전 의원의 '업적'(?)은? 철새 정치로 국회의원 6번 한 것밖에 더 있나. 반어적 의미에서는 업적다운 업적이 있긴 하다. 당내 경선 패배 후 탈당한 뒤 무소속이나 신당 후보로 출마하지 못하도록 한 '이인제 방지법'이 만들어지도록 한 게 그렇다. 금배지 한 번 더 달겠다고 '맥아더'를 끌어들이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2023-12-14 20:09:04

  • [야고부] DJ의 거짓말

    [야고부] DJ의 거짓말

    "정치생명을 걸고 불법적이거나 문제가 된 자금을 받은 적이 결코 없다." 2001년 1월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 소리를 듣고 기자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DJ는 1995년 중국 방문 중 베이징(北京)에서 14대 대선 때인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았다고 자진 토설(吐說)했다. 그것은 검은돈이 아닌가? 그 전까지 DJ는 당 대변인을 통해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대변인에게도 거짓말,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침묵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언론 인터뷰에서 "대변인이 김 총재가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나?"라고 하자 "대변인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내가 그 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DJ의 말장난은 정계 은퇴 번복으로도 이어졌다. DJ는 1992년 14대 대선에서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1995년 7월 "민족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여야가 제 몫을 하지 못한다" 운운하며 번복했다. 그러면서 "정치 재개는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 지키는 것이 되는데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변명하지 않겠다는 변명', 낯간지러운 말장난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거짓말 비난이 쏟아지자 DJ는 '거짓말'과 '약속 위반'은 다르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1997년 10월 한국논단 주최 사상 검증 토론회와 관훈토론회에서 "거짓말은 처음부터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고 약속 위반은 그런 의도가 없는 것"이라며 "저는 일생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지 거짓말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정계 은퇴 선언 번복은 처음에는 지키려 했으나 상황 변화로 그렇게 하지 못한 '약속 위반'이라는 것이다. 말장난이었다.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이런저런 사정을 핑계로 정정하면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대선 때의 '현 비례대표제(준연동형비례대표제) 유지' '위성정당 창당 방지' 공약을 파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그 정당성의 근거로 DJ의 거짓말을 들었다. DJ도 정계 은퇴했다가 1996년 복귀해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다 하다 거짓말을 약속 파기의 근거로 들이미는 그 후안(厚顔)이 기괴하다.

    2023-12-07 19:10:12

  • [세풍] 586이 민주화를 이뤘다고?

    [세풍] 586이 민주화를 이뤘다고?

    현대 정치사에 하나의 신화가 있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블라디미르 레닌과 볼셰비키가 만들어 냈다는 신화다. 이것이 신화인 이유는 러시아 혁명 발발에서 볼셰비키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차르 체제를 붕괴시킨 인민의 자발적 봉기에 편승했을 뿐이다. 대표적인 예로 1917년 2월 혁명 때 결성돼 10월 혁명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인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의식화' 필독서이기도 했던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러시아 혁명기에 관한 가장 선도적이고 정확한 연구자로 평가받는 E. H. 카는 이렇게 진단한다. "노동자 대표들의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혁명의 순간을 만들어 낸 것은 중앙의 지도력이 부족한 가운데 일어난 노동자 집단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카의 결론은? "차르 독재 타도에 대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공헌은 하찮은 것, 볼셰비즘은 비어 있는 왕위를 계승한 것뿐이다."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같은 의견이다. "레닌의 직업 혁명가 정당은 혁명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들이 취할 수 있었던 최선책은 붕괴가 일어나는 순간 바로 그 주변에 있거나 급히 귀국하는 것이었다."('혁명론') 실제로 그랬다.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레닌은 독일이 제공한 '봉인열차'를 타고 망명지 스위스에서 부랴부랴 러시아로 돌아왔다. 레닌은 혁명이 날 줄도 몰랐다. 2월 혁명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우리처럼 나이 든 세대는 곧 닥쳐올 혁명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한탄했다. 혁명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렌트의 결론은? "볼셰비키는 길거리에 방치된 권력을 발견하고 습득했을 뿐이다." 미국 정치학자 제임스 C. 스콧은 이들의 러시아 혁명 연구를 이렇게 요약한다. "혁명 과정에서 레닌이 눈부시게 성공한 점은 일단 기정사실화된 혁명을 손아귀에 넣은 데 있다."('국가처럼 보기, 국가는 왜 계획에 실패하는가') 한국 민주화가 586으로 대표되는 운동권의 공이라는 '도시 전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운동'을 할 때 이미 한국의 정치 시계는 독재나 권위주의에 머물거나 회귀할 수 없는 시간대에 도달해 있었다. 운동권의 '운동'과 상관없이 한국의 민주화는 '빠꾸'가 불가능한 경로로 '운동'하고 있었다. 586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민주화가 대세라 해도 앞당긴 것은 자신들'이라고. 해괴한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 민주화가 대세였던 것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행동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연 6·29선언부터 그랬다. '넥타이 부대'를 포함해 공(功)을 챙기려 하지 않았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행동한 결과였다. 그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운동'은 '불임'(不姙)으로 그쳤을 것이다. 제임스 C. 스콧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화 과정에서 586이 성공한 점은 기정사실화된 민주화의 공을 독점한 데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민주화 투쟁' 경력을 훈장 삼아 '민주화'가 열어 준 출세의 공간에서 서식하며 제도권 권력의 단물을 배 터지게 빨았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철 지난 프레임을 고수하며 자신들은 '민주', 반대쪽은 '반민주'로 매도한다. 입으로는 미제(美帝)를 증오하면서 자식을 미제로 유학시키는 데는 열성이다. 국민은 민주화에서 586에 빚진 게 없다. 있다고 해도 청산된 지 오래다. 때가 됐다. 지금까지 많이 우려먹었다. 그만큼 해 먹었으면 됐다. 이제 내려오라.

    2023-12-04 20: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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