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나이 듦, 그리고 삶의 보람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누가 나이가 많은가를 뽐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나이 먹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듦에 따라오는 질병(病), 외로움(孤), 가난(貧)과 같은 부정적 요소 때문일까? 하지만 나이 듦과 병, 외로움, 가난이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병약한 노인도 있지만 병약한 젊은이도 있다. 외로운 노인도 있지만 외로운 젊은이도 있다. 가난한 노인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이는 더 많다. 따라서 노인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병약함, 외로움, 가난은 노인의 진짜 특징이 아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뿐인데 사람들은 노인들이 그러한 특징을 지닌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노인에 대한 편견은 위의 세 가지 외에도 많다. 노인들은 지저분한가? 아니다. 지저분한 젊은이도 많다. 노인들은 추한가? 아니다. 멋있는 노인들도 많다. 노인들은 말이 많은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훨씬 말이 많다. 노인들에겐 꿈이 없는가? 있다. 단지 젊었을 때의 꿈과는 종류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노인은 병약하지도,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을뿐더러 지저분하거나, 추하거나, 말이 많지도 않으며 삶의 보람을 찾아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신 분들이다.

그렇다면 나이 듦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종착역이 까마득한 미래였을 때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어느덧 종점이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걸음을 멈추고 싶고 심지어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미지(未知)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나 미신, 사회적 관습이 만들어 낸 허상이거나 생명체가 지닌 삶에 대한 본능이 만들어내는 공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앞당겨 너무 두려워하거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연에서 왔다가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시에 닥치겠지만, 바로 이 순간이라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일이며, 나 없이도 세상은 본래의 계획대로 돌아감을 믿으면 된다.

은퇴하기 전엔 직장에 충실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삶의 보람이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자기 계발을 위해 약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퇴 후, 자녀들이 성장해서 떠난 후에는 무엇이 삶의 보람일까? 그것은 개인의 건강, 재력, 인생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삶의 보람을 본능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의 보람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문제다. 완성해야 할 목표를 향한 사명감으로 살 수도 있다. 또는 사회봉사를 통해 이웃에 헌신할 수도 있다. 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등 하고 싶은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도 있다. 자신이나 사회에 유익한 어떤 활동이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소일거리가 없는 권태로운 시간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거수(老巨樹)의 휘어진 가지와 옹이진 둥치에서 겪은 풍상과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살아온 연륜과 삶의 지혜를 읽어낸다면 좋지 않겠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