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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박천 독립큐레이터

박천 독립큐레이터
박천 독립큐레이터

몇 해 전부터 '워라밸'이라는 말이 이슈이다. 이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를 우리말로 줄인 신조어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유럽에서는 1970~80년대부터 등장한 단어인데, 과도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야근이 당연시되는 관행과 퇴근 후 SNS로 업무지시를 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여가 생활을 할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유럽보다 한참 늦게 등장한 이유는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경향이 크다. 이제 한국은 GDP 10위의 국가로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은 휴식 없는 사회라는 아픈 이면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생활양식에 있어 '놀다'라는 말은 무척이나 부정적이다. 소위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노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아가 '놀이', '재미있음' 등이 사회적 키워드로써 작동하고 있다. 그 예는 곧 다가오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아마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예전의 개표방송은 딱딱하게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였지만, 최근에는 위트 있는 표현으로 각 후보자들의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표현함으로써 후보자들을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함과 동시에 정보 전달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놀이적 요소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저서에서 놀이를 두고 자유, 탈일상적 활동, 환상의 공간,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인 완벽성을 가져다주는 활동 등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놀이의 개념은 예술의 요소와도 닮아있다. 예술은 스스로 질서를 구축하고 다시 벗어나고 다른 질서를 구축하는 형식, 즉 놀이적 방법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예술은 놀이로서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구축하였다.

이 같은 예술을 통한 놀이의 사유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우손갤러리에서는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타이틀로 이명미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여 예술적 표현으로 놀이를 한다. 사물에 대한 시각적 기호와 언어라는 기호, 두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틀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오늘날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경계에 있는 탓인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만, 늘 그랬듯 우리는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것이다. 스스로의 시각과 방법을 통해 하나의 놀이(질서)를 만드는 이명미 작가의 전시를 통해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볼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사유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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