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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왜 고전음악의 거장은 독일인 일색인가? - 윤봉준 교수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윤봉준 뉴욕주립대(빙햄턴) 경제학과 교수

300여 소국으로 나누어진 중세 독일
소국 군주들 권위 높이려 음악 지원

공연장 재원은 카지노 만들어 충당
겸영 금지로 고전음악 황금기 끝나

겨울에는 음악과 친해진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캐럴이나 올드 랭 사인 등 송년음악을 듣고, 추위를 피해 실내에서 지내면 무료를 피하기 위해서 음악을 찾는다. 애호하던 고전음악을 들으면 생각나는 것이 옛날 한국의 음악다방이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1970년 겨울, 친구 따라 가 본 대구의 '하이마트' 고전음악감상실이다. 부산의 향촌이나 서울의 르네상스보다 한 클래스 위였다. 단순하나 격조 높은 도리아풍의 장식으로 고향(Heimat)에 돌아온 독일인이 되는 분위기였다. 홍차 한 잔을 사면 성능 좋은 스피커로 LP판의 고전음악을 무제한 들을 수 있었다.

왕년의 유명 음악다방이 대부분 없어졌다고 들었다. CD, MP3의 보급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음악 자체는 애호가들이 건재한다. 고전음악 작곡의 거장들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독일인 일색이라는 것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과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도 있지만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멘델스존, 슈만 등 대부분이 독일 사람이다. 이들이 살았던 18, 19세기의 경제·군사 대국은 영국이었지만 영국의 유명 작곡가는 찾기 힘들다. 헨델 정도가 아닐까? 그 헨델도 원래 독일 사람으로 함부르크에서 작곡 생활을 하다 영국으로 옮긴 귀화인이었다.

거작 오페라는 작곡가가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비발디, 베르디, 푸치니 등 대부분 이태리인이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La Scala)과 나폴리의 산 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으로 이태리에 있다. 왜 고전음악의 거장은 독일이나 이태리에서 나왔을까?

19세기 말까지 독일은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1871년 비스마르크의 지도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독일은 300여 개에 달하는 독립 소국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태리 역시 수많은 도시국가들로 분리되어 있었고, 1870년 들어 16개 소국을 통일하여 국민국가가 되었다.

중세 독일과 이태리의 여러 소국 군주들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각각 음악당을 짓고 음악산업을 지원하였다. 예컨대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708~1717년 작스-바이마르 공국(Saxe-Weimar 공국)의 궁정 오르간 연주자였다. 음악 인재의 영입과 양성에 각국이 경쟁을 한 결과로 고전음악의 출중한 작곡가들이 18, 19세기에 대거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전음악의 소비자는 일상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유한계급, 귀족이었다. 단단하지만 제한된 이들 음악 소비층의 관람료로는 음악당 운영이 힘들었다. 정부나 개인의 후원금으로도 부족하여 공연장 지하에 카지노를 설치하여 도박 수입으로 재정 부족을 메울 수 있었다. 지금의 영화관에서 팝콘과 드링크를 팔듯 다품종 서비스 제공이라는 일종의 경영혁신이었다. 심포니나 오페라 관람이 지루하더라도 도박하는 재미가 있었다. 고전음악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공연장을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카지노 겸영이 금지되면서 유럽의 고전음악당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재정 악화로 인해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현재의 영화관에 고유 업종 칸막이 원칙을 내세워 팝콘과 음료수 판매를 못 하게 한다면 고전음악당처럼 수익 악화를 겪게 될 것이다. 또 언론매체에 구독료 수입만 허용하고 광고를 금지한다면 국영방송을 제외한 민간의 신문사, TV, 라디오, 유튜버들의 폐업이 이어질 것이다.

카지노 겸영 금지령을 내린 이유는 순수 음악팬들의 요구보다는 카지노 전문업체의 정치 로비가 아니었을까?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번창하고 있는 자가용 공유 서비스 '우버'가 한국에서 철수했으며, 렌터카 호출 서비스 '타다'도 반대가 심하다고 들었다. 택시업자를 위해 공유승차를 제한하는 것은 마차(馬車)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 사용을 금지하는 격이다. 기존의 공급자를 보호하다 보면 자동차에서 마차로, 컴퓨터에서 타자기 시대로 퇴행한다. 경제 규제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이해 증진을 위해 만들어질 때 사회가 풍요로워진다.

소수 이익단체를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는 어느 산업에서든 다수 소비자가 희생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오페라하우스나 교향악단은 공연료 등의 자체 수익으로는 대부분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카지노 겸영 금지로 고전음악의 황금기가 사라진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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