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國弓)이 시니어들의 레저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깍지(손가락 보호대)를 푸는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저멀리 날아가 '타악' 하고 과녁을 때리면 마음속까지 개운해진다. 어르신들은 "활쏘기는 정중동(靜中動)의 운동이다. 겉으론 정적인 운동 같지만 매우 격렬한 근육운동과 긴장의 연속"이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활터에 와 시위를 당겨보라"라고 말한다. 국궁이 어떤 스포츠이기에 이토록 이구동성의 칭송이 이어질까.
◆"국궁은 삶의 활력소"
지난 22일 오후 팔공정(대구 수성구 어린이회관 뒤쪽). 한 어르신이 저 멀리 과녁을 응시한다. 활을 잡은 손은 태산을 미는 듯 앞으로 밀고, 화살을 잡은 오른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듯 뒤로 당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두 엄지발가락에 힘을 모은다. 그리고 힘껏 당긴 시위를 살며시 놓자 145m를 날아간 화살은 '탁'하고 과녁을 맞힌다. 관중(貫中:과녁에 명중한 것)이다.
대구궁도협회 정대웅 명예회장은 활쏘기는 건강에 좋은 육체운동이자 정신운동이라고 말했다. "활쏘기는 정적인 운동 같지만, 들여다보면 매우 격렬한 근육운동과 긴장의 연속"이라며 "자연스럽게 다리 근육과 엉덩이·항문이 조여지고, 가슴이 펴지며 깊은 호흡을 하게 돼, 온몸 건강에 좋고 정신 집중에 좋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활을 쏠 때는 전신 근육을 쓰기 때문에 종합 헬스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했다. "곧은 자세가 중요하다 보니 몸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해 위장병이나 디스크를 치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정(丁)자 꼴도 아니고 팔(八)자 꼴도 아닌 각도를 뜻하는 '비정비팔'(非丁非八) 자세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노라면 항문이 꽉 조여져 요실금 예방에도 효과 만점"이라고 귀띔했다.
정 명예회장은 "국궁은 한 발을 천금과 같이 여기는 마음, 즉 '일시천금'(一矢千金)의 마음으로 절제하면서 집중해 쏘아야 활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며 "한번 맛을 들이면 손을 놓을 수 없는 것도 바로 국궁"이라고 말했다.
팔공정에서 만난 어르신들도 이구동성으로 국궁은 호흡법과 바른 자세, 활을 당기는 근력 등의 전신운동과 함께 마음 수양까지 함께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자연을 벗삼아 활을 쏘다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뱃심으로 활시위를 당기다보면 저절로 단전호흡이 이뤄져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며 국궁 예찬론을 펼쳤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팔공정에 온다는 이준근(71) 어르신은 골프, 테니스 등을 해봤지만 국궁이 최고라고 말했다. "재미도 있고, 시위 떠난 화살이 관중할 땐 스릴도 있고 희열, 쾌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이 어르신은 또 "정신이 산란해지면 과녁에 안 맞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심신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이곳의 좋은 공기 마시면서 먼 과녁에 활을 쏘니 시력 또한 좋아진다"고 말했다.
시작한 지 9개월 됐다는 조해준(68)어르신은 국궁은 시위를 몇 번 당기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보기와는 달리 운동량이 상당하다고 했다. "국궁은 바른 자세로 서서 쏴야 하기 때문에 척추를 곧게 펴준다. 또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혈액순환과 내장기관 강화에도 좋다. 또한 활을 쏘면 자신도 모르게 단전호흡을 하게 돼 심장이 좋아지고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덕수 스님은 "매일 3시간 정도 활을 쏘는데 체력도 단련되고 정신수양, 집중력이 생겨 좋다"고 말했다.
경력 4년의 정분희(72) 어르신은 활쏘기가 정신건강은 물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든지 할 수 있고, 혼자서도 가능하다"며 "이곳은 숲속에 위치해 있어 피톤치드(숲 속의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 물질)도 실컷 마시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 어르신은 또 "활은 허리와 가슴을 쭉 펴고 올바른 자세로 쏘아야 하기 때문에 특히 관절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에게 좋은 운동"이라며 "친구들은 몸이 안 좋아 병원순례를 하는데, 나는 운동 순례를 한다"며 활짝 웃었
(박스)◆ 국궁과 양궁의 차이
양궁은 경기를 위해 활과 경기 방식을 개량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온 스포츠인 반면, 국궁은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그 멋을 즐겨온 심신수련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활과 화살에서부터 쏘는 방식이나 자세, 과녁과의 거리, 점수 매기기 등이 확연히 다르다.
양궁은 조준기를 사용하지만 국궁은 활 자체나 활을 쥔 주먹을 가늠자로 쓴다. 국궁은 145m 거리에 가로 2m, 세로 2m67 크기의 과녁을 향해 쏘고, 양궁은 70m 거리에 지름 122㎝의 동심원 과녁을 향해 쏜다.
화살을 잡는 방법도 다르다. 국궁은 엄지와 검지로 화살을 움켜쥐는 반면, 양궁은 검지와 중지로 활시위에 걸친다. 이 때문에 양궁은 깍지를 검지에 끼지만, 국궁은 엄지에 깍지를 낀다.
활에 화살을 거는 위치도 다르다. 양궁은 활의 왼쪽에, 국궁은 활의 오른쪽에 화살을 건다. 또한 시합 시 점수 계산법 역시 달라 양궁의 경우 표적판의 색깔에 따라 점수를 달리 매기는데 반해 국궁에서는 과녁의 어디를 맞추더라도 점수가 같고 화살이 과녁에 맞은 것을 '관중'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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