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울려 퍼지던 음악이 멈추고 심사위원석의 서늘한 시선을 받으며 청년과 배우들은 극장을 빠져나온다.
"정말 떨렸어!"
"어떡하지? 아까 실수했는데…."
홀로서기 후 뮤지컬 창작자가 된 청년은 배우들의 들뜬 어깨를 토닥이면서 애써 태연한 척한다.
"아니야. 너무 잘했어. 좋은 결과 있을 테니 기다려보자."
배우들 틈새로 빠져나와 긴 복도 끝에 다다르자 긴장했던 한숨을 내려놓는다. 말을 더듬진 않았나, 원하는 바를 제대로 설명을 했던가, 세 번째 질문이 뭐였지? 최근 연이은 참패를 맛본 26살 청년의 얼굴에는 주눅이 가득 들어있다.
몇 개월 전, 처녀작의 DIMF 수상 이후 제작사와 작품의 상업화를 착수했을 때만 해도 자신의 뮤지컬 인생이 활짝 열린 것처럼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저작권 문제로 공연화는 하루아침에 무산되어버렸다. 실망할 겨를도 없이 타 대형 뮤지컬 음악팀으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실력의 한계와 부담감으로 자진 하차해야만 했다. 밤을 새우며 만든 연극 음악은 극단으로부터 말없이 전곡 퇴짜를 맞고 작곡가가 돌연 교체되었다. 그야말로 청년은 그간 실패의 연속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쳐버린 상태였다.
지금 청년은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뮤지컬 지원사업 창작팩토리'에서 배우들의 시연에 이어 면접까지 끝난 후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영원 같던 몇 시간이 흐른 후 모든 지원자들을 부르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후보자들 사이에서 청년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느라 손톱이 다 하얗게 되는 지도 모를 만큼 손가락을 꽉 쥐고 있다
"4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단 한 작품만 정식 공연으로 만들어질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럼 2008년 창작팩토리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1등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몇 초가 흐르고 발표자가 마침내 입을 연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입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패배감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함께 고생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눈에 밟혀 울고 싶었지만 울 수도 없다.
'정말로 끝인가? 이 길이 아닌 걸까? 왜? 무엇이 문제였지?'
1등으로 뽑힌 작품의 팜플렛을 열어보자 안에는 청년이 그토록 동경하던 배우도 있었고 스태프들도 많고 화려했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내용과 주제가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졌다.
'그들은 뭐가 다르길래 나보다 한발 앞서 올라가는 걸까?'
배우들의 사진 아래로 조그맣게 창작자의 프로필이 눈에 들어왔다. '뉴욕대 티쉬스쿨' 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청년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배워야겠어. 뮤지컬 본고장에서."
어느새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고 괴로웠던 마음은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뛰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경험일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지만 새로운 도전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새겨진 순간 청년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뛰어들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절박함 마저 동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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