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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기원전' 공천

정욱진 정치부장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욱진 정치부장
정욱진 정치부장

대구경북(TK)이 무소속으로 술렁이고 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거나 준비 중인 전·현직 국회의원만 10명가량 된다. 공천 배제(컷오프)된 예비후보들도 무소속 연대를 통한 단일화 선언으로 뒤따르고 있다. 한 원로 지역 정치인은 "TK에서 이렇게 무소속 출마 선언이 많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들의 무소속 출마 일성은 모두 미래통합당 지도부의 무능함과 공천관리위원회의 오만함에 맞춰져 있다. 김형오 공관위가 TK는 안중에도 없이 '막천'을 일삼는 등 4년 전 이한구 공관위보다 더 나쁜 결정을 마구잡이로 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번 통합당의 총선 공천을 두고 '기원전(기준은 물론 원칙도 없고, 전횡만 있는) 공천'이라고 하겠나. TK 현역 의원은 "TK가 무조건 공천 혁신, 물갈이 공천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공천을 보면 통합당이 TK를 얼마나 무시하고 업신여기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얼마 전 만난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합당이 대구 수성구에서 후보 '풍차 돌리기'를 한 점, 일부 선거구에 지역민에게 이름도 생소한 '서울 TK'를 내리꽂은 점 등을 보면 TK 시·도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속 정당을 떠나 분통 터지는 일"이라고도 했다.

황교안 대표의 무능한 리더십도 문제다. 공관위가 헛발질을 하면 당 지도부가 나서서 민심을 수습하는 등 텃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당 강세 지역의 민심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려는 우유부단한 리더십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그는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공천 중 가장 혁신적인 공천이었다"고 밝히는 등 TK 민심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입장을 내놨다.

이를 두고 경북의 한 의원은 "지난달 매일신문이 지적한 'TK 식민지론'이 현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돈도 제일 많이 내고 인원 동원도 제일 많이 하고 표도 제일 많이 줬지만, 항상 뒷전이었고 대접은 제대로 받지 못 한다는 얘기다.

모(母)회사가 이러니 자(子)회사도 TK 알기를 우습게 안다. 통합당의 비례대표 전담 위성 정당인 미래한국당이 16일 발표한 '40인 비례대표 추천 명단'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40명의 후보 중 TK에 제대로 연고가 있는 인사는 39번에 배정된 한무경 전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이 유일하다. 순번 20번 정도가 당선권이라는 공관위의 전망을 고려하면 텃밭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처사다.

지역구 공천에서 홀대받고, 비례대표 공천에서는 아예 무시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무기력하고 허약해진 수준이 아니라 'TK 정치는 죽었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광주·전남 18곳 선거구 중 17곳(94%)에서 경선을 치른다. 통합당이 TK 25곳 중 13곳(52%)을 경선 지역으로 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주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민주당도 광주·전남 알기를 우습게 봤고, 오만했다. 어떤 비판이 나와도 표가 나왔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4년 전 민주당이 호남 민심에 된통 혼나본 경험이 있어서 민심에 반한 일방통행식 내리꽂기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텃밭' 예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통합당에 묻고 싶다. 언제까지 TK를 무시할 것인가. 이러다 통합당은 지역·지지층 다 잃을 수 있다. 4·15 총선이 이제 27일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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