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미강의 생각의 숲] 국민이 부여한 권력 사용법

권미강 작가
권미강 작가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안다. 그 폭력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손에 쥔 위정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폭력에 노출됐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숨죽여 살거나 스스로 권력에 맞서 투사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과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반복되는 전쟁 같다. 끊임없이 반복되고 반복되면서 세월은 우리에게 권력과 폭력의 경험치를 전수한다.

누군가 그랬다. 위정자(爲政者)는 나쁜 권력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을 일컫는 단어라고.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위정자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국민을 향해 휘두르는 후안무치한 인간들로 저장돼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가 보여주고 알려준 경험의 산물이다.

간첩 사건이나 국가보안법 같은 굵직한 사건에 연루되지는 않았지만 필자도 국가 폭력의 작은 희생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지역 문화재단의 문학관 운영팀장이었던 필자는 문학관 공원에 노란 추모 리본과 추모 시화를 설치했다. 어느 날 문화체육관광부 직원 3명이 갑작스레 문학관을 방문했다. 그 후 필자는 갑작스레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3개월 뒤에 정리해고됐다. 문학관 경영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냈지만 정규직 전환 대신 해고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소명 절차도 그저 형식에 그칠 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필자가 겪은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상당했다.

이후 진실을 알게 됐다. 박근혜 정권이 예술인들에게 씌웠던 블랙리스트라는 올가미에 걸렸다는 것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었다. 블랙리스트에는 전국의 다섯 개 문학관 이름만 명기돼 있을 뿐 개인의 이름은 없었다. 문학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정권이라니. 기막혔다. 다만 진상 조사 과정에서 당시 필자를 정리해고한 과정이 낱낱이 드러났다. 보수 성향의 관장과 원로 문인들, 문체부의 지시가 한데 모여 재단이사장 동의 아래 해고됐던 것이다. 억울하지만 필자는 블랙리스트 안에도 들지 못하는 블랙리스트가 됐다.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문구가 제값을 하는 선거가 곧 다가온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사람들로 구성된 국민의 대표 기관'이라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국회'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선거다. 막걸리 선거니 고무신 선거니 하며 낯 뜨거운 금품선거도 있었고 투표용지 자체를 바꿔치기하는 부정선거와 깡패를 동원한 폭력선거 등 오점으로 기록된 선거들이 있어 왔다. 그 오점 선상에 있었던 사람들이 여전히 민의를 대변한다며 후보로 나오고 반성은커녕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해가며 국민들의 갈등을 부추긴다. 비례정당제 덕인지 폭행치사에 청소년 강간까지 했던 범죄자들이 후보로 나서는 추악한 꼴을 보이고 있다. '저리 인물이 없을까' 싶다가도 진짜 저런 사람들이 다시 국회에 진출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생각에 몸이 떨린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 나라에는 다시 국가 폭력이 난무하고 필자 같은 희생양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선거는 상식적이고 민주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국민의 대표를 뽑는 행위이며 국회의원의 권한은 국민이 주는 것이다. 그 권한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면, 그런 음흉한 욕심을 숨기고 선거에 임한다면 언젠가는 그 민낯이 드러나 스스로가 역사의 오점이 될 것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 사용법을 제대로 익히고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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