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고전의 향기를 퍼트리고 싶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정민 지음/ 진경문고/ 201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실_이금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실_이금주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정민 지음/ 진경문고/ 2016)

어떤 책이 좋아요? 고전은 뭐예요?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 질문이다. 이 책이 대답해 준다. 좋은 책은 매일 읽어야 하고, 가볍게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것. 그런 책이 고전(古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문장과 감탄사로 '아하~ , 오호~' 라며 무릎을 치게 한다. 그래서 고전은 어렵고 힘들다는 편견을 깨끗이 날려준다. 옛 성인들의 독서법을 구수한 이야기로 들려주는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이 그렇다.

정민(鄭珉 1961~)은 고등학교 시절 한시의 매력에 빠져, 교과서와 참고서에 나오는 한시는 무조건 외우고 다녔다. 그 시절의 공부가 지금의 한시를 분석하고 읽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 시대 박지원과 정약용의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여 1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어려운 고전 문헌의 내용을 시원스레 풀어주며 성실과 열정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조선의 학자 퇴계 이황과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등 위인들의 독서법과 공부 방법을 알려준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더욱 빛나는 힘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다산의 문장 속에 풍~덩 빠지는 순간 그윽한 매화 향기가 퍼진다. "공부머리란 말을 '문심혜두(文心慧竇)'라고 표현했다. 문심은 글을 읽는 마음이야, 혜두는 슬기구멍이란 뜻. 열심히 익히고,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을 움직여서 슬기구멍이 뻥 뚫리게 된다는 거야."

"책은 많은데 읽은 것은 적다. 이전에 배운 것은 몸에 익숙하지가 않고, 새로 배운 것은 아직 낯설다.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게으른 마음이 생긴다."(171쪽) 정신이 번쩍 들면서 맑은 물밑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부끄러웠다. 대충 읽고 스치는 독서로는 남는 것이 없었다. 한 글자마다 뜻을 알고 의미를 따지며 읽어야 한다고 배웠다. 한 권의 책을 소화시키려면 베껴 써야 완전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게 보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은 한 권도 없다. 오늘부터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2만여 권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학교도서관에서 책의 안과 밖을 지키는 문지기이다. 하지만 책 속에 눈들과 진실한 마음으로 마주보기 한 적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책 속에서 빛나는 글들을 펼쳐달라고 아우성이다.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21쪽)

그 넓은 고전의 세계에 다가설 길을 찾았다. 대구에도 고전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소통하는 곳이 있다. 학이사(學而思) 독서 아카데미, 작년 4월 목요일, 서평 강좌에 마지막으로 등록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문무학 박사님의 수업은 삶의 자세에 대한 지침과 지식을 폭포수처럼 부어주셨다. 처음에는 전혀 물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점 짙어가는 책의 향기에 조금씩 물들어간다. 매달 이루어지는 고전의 독서토론회는 어두운 길 환하게 비추는 등불처럼, 고전(古典)의 길로 안내한다.

나는 그 고전의 길을 함께 걸으며 행복한 꿈을 꾼다. 도서관에서 해마다 단풍잎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고전서가를 만들어 고전의 향기를 퍼트리려 한다. 조선 선비들의 거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책가도(冊架圖)를 도서관에 오는 친구들과 함께 꾸미는 것이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시간을 정해 책을 읽으며, 책 읽기를 멀리하던 아이들도 친구들과 손잡고 또는 혼자 와서, "선생님, 고전은 옛사람과 미팅하듯이 설레요." 라는 반갑고 예쁜 말을 한다. 그 말을 또 듣고 싶다. 2020년 '책가도'는 어떻게 꾸밀까? 벌써 콩닥콩닥 설렌다.

이금주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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