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총선과 환국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조선 19대 왕 숙종이 임금에 올랐을 때 집권 세력은 남인(南人)이었다. 남인의 영수이자 영의정인 허적의 집에서 조부를 위한 연시연(延諡宴·시호를 받은 데 대한 잔치)이 열렸다. 비가 오자 숙종은 궁중에서 쓰는 용봉차일(龍鳳遮日·기름을 칠해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든 천막)을 보내줄 것을 명했지만 벌써 허적이 가져간 뒤였다. 노한 숙종은 허적 등 남인을 역모로 몰아 내쫓고 조정 요직을 서인(西人)으로 싹 바꿨다. 1680년 경신환국이다.

숙종은 왕권 강화 수단으로 환국(換局)을 적극 활용했다. 장희빈과 관련한 환국도 일어났다. 환국은 글자 그대로 국면을 전환하는 것이다. 남인과 서인의 교차 집권을 가능케 했던 환국은 숙종이 허수아비가 아닌 제왕으로서의 정국 주도권을 잡아나간 고단수의 정치 행위였다.

환국은 선거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환국을 행사한 주체가 임금, 선거를 하는 주체가 국민이란 점이 다를 뿐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심판이란 점에서는 닮았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70여 년 동안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매섭게 응징했다. 오만·부패·무능한 정권은 어김없이 선거에서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받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블랙홀이 돼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들을 빨아들였지만 집권 세력에 대한 평가·심판이라는 총선 본질은 변함이 없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반(反)기업·친노조 정책들과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검찰 학살, 코로나 사태 대응 등 문 정권의 3년 국정에 대해 국민이 성적을 매기는 것이 이번 총선이다.

허적은 허락도 없이 임금이 사용하는 천막을 가져가 썼다가 자신은 물론 남인 전체가 몰락했다. 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화를 당한 것이다. 촛불로 태어났다는 문 정권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을 넘어 국민을 개·돼지 취급해 분노를 샀다. 허적의 잘못은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며칠 후 총선에서 국민은 2020년 경자환국을 할지, 아니면 집권 세력에 다시 힘을 실어줄지…. 이 나라의 운명이 달린 총선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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