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간절하게 물을 찾았다. 변기 뒤 수조 안에 있을 물이 생각났다. 어둠 속을 더듬어 그 물을 컵으로 떠냈다. 문명은 끈적거리는 물이끼를 키우는 원시적 공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의 한 부분이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이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과 닮아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보는 세상은 우선 아프고 두렵다.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을 보고 듣고 있자니 몸이 아픈 듯하다. 심리적 감염이다. 소설 속 유일하게 눈 뜬 자인 의사 부인의 말처럼 잠드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눈 뜨면 안 보일까봐, 아플까봐서다.
사라마구는 무겁고 참담하게 그려낸 눈 먼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읽어내게 하고 싶었을까. 생물학적 실명으로 격리당하는 문명사회를 사회적 실명으로 도태되는 비문명사회로 후진시키는 것도 인간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읽어내길 바랐을까.
지난 1월, 대구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진로진학멘토단 사업의 일환으로 대구 출신 대학생(예비 포함)과 재학생과의 만남이 있었다. 의대 진학에 도움이 되는 독서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첫 번째 멘토는 "의학 전공 관련 책이나 논문을 권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 관련 책"이라고 조언했다. 두 번째 멘토는 "어떤 책이라도 좋다. 세부 전공이 다양하니 폭넓은 독서가 도움이 된다.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흥미롭게 읽었다"고 다르게 접근했다. 두 멘토 모두 의대 재학생이었다.
'어떻게 하면 의대에 진학할 것인가'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의대에 진학할 것인가'는 같은 듯하나 다르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과 바이러스 질병을 해결하겠다는 꿈은 다르다. 바이러스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학, 약학, 유전학, 생물학, 공학,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전공과 접근이 필요하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뒤플로 박사 부부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면서 실험경제학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 빈곤 퇴치에 좀 더 실효성 있는 방법을 경제학자로서 접근하고 찾아내어 빈곤한 이들을 돕고 있다.
진로는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는 길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진로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중요한 점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성장단계별 목표 중 하나가 직업이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개학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 진정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전환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미래는 건강하고, 해결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눈을 뜨고 있으면 제대로 보자. 심리적 방역과 개학 연기로 만들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하고 책을 읽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최선을 다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니까.
이현아 대구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장학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