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떠오르는 300여 개의 단어를 수첩에 적었다. 미세한 의미차를 지닌 낱말까지 적자니 노트 한 권을 훌쩍 넘겼다. 이후 폐지 처리장에 가서 버려진 사전을 수집했다. 작가는 유용성이 다 된 사전을 보며 기능적인 본래 역할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사물이 도구의 용도로 파악되는 한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고, 그것이 망가졌을 때만 그 존재감이 강렬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마치 편안한 신발은 신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고, 고분고분한 연인은 나와 다른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착안해 작가는 도구의 방식을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개념어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021갤러리가 25일(토)부터 권도연 개인전 'Flashbulb Memory'전을 연다. 'Flashbulb Memory'를 우리말로 풀면 '섬광기억'쯤 된다.
권도연은 기억의 단편들을 현실로 소환시켜 사진으로 재구성하고 그때 나타난 대상들을 지금 마주하는 세계로 교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념어 사전'과 함께 '고고학' '섬광기억' 등 작업을 통해 물질과 기억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들과 최근 신작 '북한산'시리즈 20여 점을 선보이며 관객들로 하여금 기억과 현실의 심연을 유영하도록 이끌고 있다.
작품 '고고학' 시리즈는 작은 삽을 구입해 땅을 파면서 발견한 스티로품, 컴퓨터 부품, 캔 등에서 이미 써버린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 결과물이다. 작가에게 있어 효용성을 뺀 모든 사물은 손 안의 친근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유쾌함과 명랑함을 일으키는 낯선 쓰임으로 등장하는 데 권도연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작품 '섬광기억-여름방학'은 유년기 집 근처 한 작은 헌책방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작가의 감정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곳에서 작가는 책 속의 모든 언어가 합쳐진 하나의 단어를 상상하곤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최근작 '북한산'은 집 근처 북한산의 야생 초목과 들개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을 사진으로 기록, 자연의 생태계는 마치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의 풍경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임을 경험한 작가적 상상력을 예술적 장르를 통해 하나의 조형언어로 표현했다. 전시는 6월 12일(금)까지. 문의 053)74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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