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미강의 생각의 숲] 코로나바이러스의 충고

권미강 작가
권미강 작가

지난 4월 22일 한 통의 편지가 인류에게 보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진 2020년 지구의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공포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서명한 편지는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로 시작된다. 코로나바이러스인 나는 인류를 벌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전쟁과 이기적인 삶으로 지구가 점점 병들어 가는데도 결코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인류를 깨우치기 위해 왔다고 역설한다.

'대규모 홍수, 불타는 화염, 강력한 폭풍과 무시무시한 돌풍, 수질오염으로 죽어가는 해양동물들, 녹아내리는 빙하, 혹독한 가뭄….' 이런 현상들이 지구의 절규였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고 다그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소수의 욕심에 의해 일어나는 분쟁은 증오를 낳고 살육을 저지르고 결국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길로 가고 있음을 따끔히 지적한다.

그러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인 자신이 지구의 숨통을 터 주고 인류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려고 왔으며 지구가 느꼈던 고통을 인류에게 주고 있다고 했다. '지구에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고열을 일으켰고, 대기가 오염으로 가득 찬 것처럼 호흡곤란을 가져다주고, 지구가 약해지듯이 허약하게 만들고 즐겁던 외출도 빼앗고 세계를 멈추게 했다'며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노라 일갈한다. 그로 인해 인류는 고통스럽지만 '지구의 곳곳이 맑은 하늘색을 찾고 공기의 질도 달라졌으며, 물이 깨끗해지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인다'고 확인시켜 준다.

'인간들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자신이 떠나고 지금의 고통이 사라진 후에 서로 싸움을 멈추고 물질적인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지구 안의 모든 생물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하라'는 다독임으로 끝을 맺는다. 아프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편지는 '디 아시안 엔'의 에디터인 비비안 알 리치(Vivienne R Reich)가 쓴 편지글 형식의 칼럼이다.

이 편지는 온라인을 통해 세계 곳곳에 전해졌다. 한 언론인에 의해 작성된 편지였지만 진짜 코로나바이러스가 보내는 인류에 대한 경고인 듯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편지 내용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의 공기의 질과 하늘색은 지구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도 오랜만에 맑아졌으며 인도 북부에서는 40년 만에 230㎞ 떨어져 있는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고 국립공원 도로에는 동물들이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사진들이 언론에 보도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간 활동의 제한이 가져다준 모습이다. 개인 위생 수칙이 강화되면서 눈병이나 독감 같은 유행병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프리카의 최빈국인 '차드'의 시인 '무스타파 달렙'(Moustapha Dahleb)의 시에서처럼 코로나바이러스는 부자건 가난하건 인류는 한 배에 탄 운명 공동체라는 걸 확인시켜 줬다. 운명 공동체 인류에게 지구는 어머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품에서 태어난 생명들 중 가장 총명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위해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마구 짓밟았다. 어쩌면 코로나는 가이아의 매질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살라는 매질. 인류가 쌓아 올린 탐욕의 바벨탑은 코로나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다시 겸허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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