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해서일까. 멜로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만큼 생각보다 그 반향이 크지가 않다. 저마다 새로운 실험을 더해 돌아왔지만, 한 방이 부족한 느낌. 이건 멜로의 운명일까 아니면 실험이 부족한걸까.
◆반 토막 난 '반의 반', 호평 받지 못한 '더 킹'
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은 AI라는 소재를 가져와 짝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로 해석해내려는 실험을 했다. 이미 죽은 사랑을 잊지 못해 AI를 통해서 그를 복원해내고 짝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하원(정해인)이 그런 그를 짝사랑하는 서우(채수빈)를 만나면서 반쪽짜리가 아닌 완전한 사랑을 이뤄간다는 이야기. AI 같은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고 사랑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법을 짝사랑으로 은유해낸 이 작품은 그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낯선 세계를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더니 심지어 0%대에 근접했고, 결국 16부작에서 12부작으로 조기종영을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반 토막이 나 버린 것.
'반의 반'은 '공항 가는 길'을 썼던 이숙연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았다. 이숙연 작가는 '공항 가는 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간은 문학적으로 은유하는 감성 멜로를 잘 그려내는 작가로서 '반의 반'에서는 골목길이 갖는 감성을 잘 포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설득되지 않은 멜로는 AI 소재를 접목한 이 실험을 미완으로 만들었다.

김은숙 작가의 신작으로 관심을 모은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 역시 평행세계라는 낯선 소재를 가져와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이라는 두 개의 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로맨틱 코미디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평행세계라는 소재의 실험을 보편적으로 설득시키는 데는 아직까지 실패하고 있다. 그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면서, 이 작품은 백마 타고 온 황제가 걸 크러시를 보이는 형사와 사랑을 하는 또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로 비춰지게 됐다.
벌써부터 섣부른 예단이 나올 법한 드라마지만,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래도 여전히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낯선 세계가 제대로 설득되고, 그 판타지가 단순한 신데렐라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면 반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초반의 설정들은 이런 반전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드러내지만.

◆청춘을 들고 온 '화양연화', 성공할 수 있을까
종영한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멜로에 날씨라는 색다른 요소를 접목한 작품이었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실패한 드라마였다. 최고시청률이 2.6%에 머문 이 드라마가 그나마 괜찮은 종영을 할 수 있었던 건 초반의 다소 심심한 전개에서 중반을 넘기며 주인공 목해원(박민영)네 가족의 비극을 끄집어내면서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통 멜로가 가진 애틋함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지만, 역시 정통 멜로만으로는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부족하다는 걸 드러낸 작품이기도 했다.
새로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역시 정통 멜로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런 점에서는 성공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드라마다. 다만 '화양연화'가 가진 강점은 90년대 청춘의 시간들을 강력한 추억의 코드로 끌어안고 있고, 그것이 현재와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메시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당대의 대학을 경험했던 중년들이라면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정통 멜로라는 것.
최근 들어 멜로는 멜로만으로는 힘을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점점 정설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멜로는 대부분 타 장르와 결합을 통해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적 틀을 가져온 후 그 위에 얹어지는 멜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접목만으로 멜로가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아픈 상처 또한 잊지 못하는 남자와 과거의 상처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여자의 멜로를 다뤘다. 기억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져와 멜로로 엮어놓은 좋은 시도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최고 시청률 5.4%). 또 KBS 수목드라마 '어서와'는 남자로 변하는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반려 로맨스라는 색다른 시도를 했지만 시청률은 1%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쏟아져 나온 작품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과연 여전히 멜로드라마는 유효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통 멜로만으로는 분명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저마다 색다른 소재나 요소들 심지어 장르적 틀까지 가져오려는 실험들이 최근 멜로드라마에서는 엿보인다. 실험 자체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성패를 가르는 건 그러한 새로운 시도가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큼 충분히 완성도가 높은가 하는 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현재 멜로드라마들의 전반적인 부진은 그 장르의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실험이 완전하지 못했을 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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