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고사(枯死) 직전 원전산업 다시 살려야

김태한 대구메트로환경 사장

김태한 대구메트로환경 사장
김태한 대구메트로환경 사장

세상만사가 살리기는 어렵지만 죽이기는 쉽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는 어려워도 '망치기'는 쉽다.

원자력건설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 막대한 수익성, 무궁한 세계시장, 반도체와 자동차를 능가하는 에너지산업이다. 30년간 쌓아온 기술이 탈원전정책으로 3년 만에 고사 직전에 놓였다. 한창 건설 중이던 신한울 3·4호기를 중단시켰다. 내년과 후년 준공 계획이었던 신고리원전 5·6호기는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고, 경북 영덕에 건설하기로 한 천지원전 4기는 부지만 물색하다 하세월이 됐다. 잘나가던 두산중공업이 파탄 직전에 처해 자구 노력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고, 삼성 한화 SK GS 현대건설 등 굴지의 원전 건설사들도 중대한 어려움을 맞아 원전산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기술이 사장되고, 전문인력이 고사하면서 세계 최고의 원전 강국이 시장에서 아예 퇴출될 위기다.

2017년 현재 원자력발전소는 세계 30개국에서 449기를 운용하고 있고 27개국에서 164기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1기당 평균 10조원임을 감안하면 1천640조원의 시장이 당장 열려 있다. 2014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1천500조원이 원전 건설에 사용될 것이며 이 중 아시아에서 800조원이 투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이 6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발목을 잡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 등이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17년부터 중국은 최소 11개국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고 러시아는 동구권과 러시아의 위성국가에서 시장 우위를 점거, 우리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인도 폴란드 베트남 루마니아 영국 등에서 원전 건설 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우리는 '지붕 쳐다보는 닭' 신세가 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켜 탈원전 정책의 근거가 된 일본도 지난해 원전 재개를 천명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원전산업=재앙산업'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당연히 해외 진출은 더 어렵게 됐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을 대상으로 40조원을 지원하면서 두산중공업 등 고사 직전의 원전산업에는 근로자 해고 방지를 위한 인건비 정도를 지원한다고 한다. 기업이 인력을 고용하는 이유는 생산에 참여하기 위한 것인데 원전을 못 짓게 하면서 인력을 유지하라는 것은 기업을 두 번 죽이는 것 아닌가? 정부는 최근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위해 3천223억원을 투자하는데 한수원 등 기관에서 2천억원을 출연토록 했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사업이니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시체놀이에 불과하다. 한수원 등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더군다나 원전 해체는 빨라도 10년 뒤에야 실전에 들어간다. 해체 인허가만 2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우선 빚을 내 투자하더라도 갚을 능력을 마련해야 한다. 돈줄을 꽉 막고 10여 년간 멀쩡한 건설인력과 기술은 고사시키면서 신장개업으로 없는 기술과 부족한 인력수급을 위해 돈을 퍼부으라니 밑 빠진 독에서 물을 대라는 격이 아닌가. 당장 연못에 고기를 두고 왜 다시 못을 파는가? 원전산업을 망쳤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탈원전정책'을 파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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