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달 일정한 금액을 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돈을 받은 이후에 어떠한 강제적인 의무사항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돈을 받겠다고 하지 않을까? 아무 조건 없이 준다는데 굳이 그 돈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무슨 얘기인가 하겠지만, 최근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된 질문이다. 소득하위 70%에만 지급하는 것에서 우여곡절 끝에 모든 국민(개인별 지급이 아닌 가구별)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언론매체들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에 간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구의 전통시장인 서문시장도 조금은 활기를 찾는 것 같다. 4월 초, 서문시장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조금은 지나간 시점이었지만 서문시장에는 손님보다 매장 주인들이 더 많았다. 그나마 매장의 절반 이상은 문을 열지 않았고, 서문시장의 별미인 국수 점포들도 거의 열지 않았었다.
지난 18일 오후, 서문시장을 다시 방문하였다. 시장 근처에서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해 한참을 기다린 후 서문시장 입구까지 갔었지만,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긴 차량의 줄을 보고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이었지만 시장의 도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으며, 차를 가지고 장을 보러 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 시장은 만원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사회복지제도의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소득은 학문적으로 보편성, 무조건성, 정액성을 요건으로 한다. 즉, 모든 국민이나 시민에게(보편성), 근로 활동 여부나 재산 및 소득의 많고 적음에 상관 없이(무조건성), 일정한 현금(정액성)을 지급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복지제도인 사회보험(흔히 4대 보험이라고 한다)과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이다)의 경우, 근로 활동 여부나 근로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혹은 대상자의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조사하여 복지 급여를 받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근로 능력이 있어 소득 활동을 하고 있으면 사회보험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고, 근로 능력이 없거나 부족해서 최소한의 생계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공공부조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자산이나 근로 능력에 대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매달 일정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유럽에서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1980년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미 몇몇 국가에서는 기본소득제를 실험적 차원에서 시행하고 제도의 실행 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기본소득제에 대해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지급함으로써 근로 동기가 약화되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도덕적 비판에서부터 정부의 재정 부담이라는 경제적인 측면의 문제점까지 다양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여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소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일정한 구매력을 보장해줌으로써 경제에도 도움이 되어 기본소득제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오히려 우파에서 기본소득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일을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득(income)이라고 하면 근로소득을 의미한다. 일을 해야 근로소득을 벌 수 있고, 근로소득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해서 소비도 하고 세금과 사회보험료도 납부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왔다. 사회복지제도는 노동시장에서의 근로 능력, 고용 관계와 그에 따른 소득 수준을 전제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나듯 사회복지의 기본적인 패턴이 깨져 가고 있다. 일시적으로 가구별로, 상품권으로도 지급한다는 점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건 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첫 복지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전염병에 대비한 방역과 공공의료 체계의 정비와 더불어 사회복지의 정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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