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여유(餘裕)로운 나라를 위한 여유(與猶) 있는 공직 생활

하길종 대구소방안전본부 소방장

하길종 대구소방안전본부 소방장
하길종 대구소방안전본부 소방장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는 목민심서로도 유명한 18세기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與猶堂)이라는 생가 서실이 있다. 다산은 정조가 서거한 후 1801년부터 시작된 긴 유배 끝에 1818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18여 년 동안 후학을 양성하고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이 서실의 당호 '여유'(與猶)는 노자 도덕경 제15장의 한 대목에서 따온 말이다.

"여(與)함이여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유(猶)함이여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

겨울철 얼어 있는 냇물을 건널 때, 얼음이 단단한지 얇게 얼어 깨질 위험이 있는지 확인하듯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몸가짐을 더욱 조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유(與猶)는 세상을 조심하고 신중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산의 의지가 담긴 당호라고 볼 수 있다.

신중한 몸가짐으로 부정부패를 멀리하는 공직자의 태도는 비단 체면과 위신의 차원을 넘어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시 된다. 부당한 방법으로 물질적 혹은 사회적 이득을 취하는 부패는 공적 영역으로 확산할수록 사회경제적 비용을 증대시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패는 공공투자와 관련된 정책 결정 과정을 왜곡시키거나, 민간의 투자 활력을 저하시키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패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다수의 연구에서도 부패가 투자, 혁신, 인적 자본 등의 경로를 통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요 국가의 청렴지수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관료주의지수 등을 사용해 부정부패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했다. 그 결과 부정부패는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비리에 따른 불확실성도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청렴도가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이 1.3%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올해 1월에 발표한 2019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우리나라가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180개 국 중 39위를 차지했다. 1위는 덴마크와 뉴질랜드로 각각 87점을 기록했다. 2016년 세계 52위였던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2017년 51위, 2018년 45위, 그리고 지난해 39위로 점점 상승하고 있다.

뇌물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던 명(明)나라 조정에 깨끗함을 유지한 우겸(于謙)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지방 벼슬아치였던 그가 수도를 잠시 방문하자 높은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친구의 충고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상관에게 바칠 뇌물은 없고 두 소매에는 깨끗한 바람뿐"이라고 했다. 옛 복장에서 폭이 넓었던 소매는 높은 이에게 바치는 뇌물을 넣고 다니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일화는 지금까지 양수청풍(兩袖淸風)이라는 고사성어로 남아 있다.

부패는 한 사람을 시한부로 살찌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청렴은 사회 전체를 잘살게 한다.

국민의 삶이 여유(餘裕)로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공직자의 깨끗한 두 소매로부터 시작하는 여유(與猶) 있는 공직 생활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