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일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어느샌가 뉴스 검색창에서 하루 확진자 숫자를 확인하고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를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일과로 자리 잡았다. 지인이 확진자 판정을 받았다거나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놀란 가슴을 붙들어 놓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숫자를 불안스레 세어 보며 떠올리는 질문은 오직 하나일 것 같다. 도대체 언제 끝나나?
현 시대 최고의 지성에게도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리라. 하지만 그가 궁금한 것이 종식 날짜만은 아니다. 21세기 구루의 날카로운 시선이 살피는 것은 응답 없는 질문이 드러내는 어떤 균열이다. 바이러스는 일상을 기이한 작동 불능 상태로 빠트렸다. 우리는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도, 마스크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식당에서 밀착하여 앉을 수도 없다. 일상을 되돌리기는 난망하고 '언제 끝나나?'만 반복한다는 것은 증폭된 공포감으로 우리의 사유에 미묘한 틈새가 생겼다는 징후다.
저자 지젝은 균열에서 어른거리는 혼돈을 놓치지 않는다. 정치가들은 대중의 불안감에 편승해 난민을 쫓아내는 것을 방역으로 정당화한다. 평소 같으면 국수주의적 차별에 대해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겠지만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포퓰리스트들에게 은근히 동조한다. 심지어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오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방역 조치를 공포만 조장하는 '과도한 대응'이라 치부하여 불필요한 통제로 환원한다. 확진자가 늘어남에도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차별을 방역으로 정당화하는 입장이든, 방역을 통제로 보고 거부하는 입장이든 어딘가 사유의 공백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클럽을 가득 메운 청춘남녀들과 플로리다 해변에 꽉 찬 인파를 바라보며 나오는 한숨은 사유의 공백을 넘어 중독으로까지 느껴지는 맹목성 때문이리라.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풍요로운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술이 자신을 갉아먹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코올을 포기할 수 없는 중독자들과 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더구나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고 필요한 방역 조치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마냥 방치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풍요로운 일상에 중독된 우리의 일그러진 민낯을 폭로한다. 지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염병이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 반론을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19는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가해진 사형선고다."(57쪽) 안락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자본주의가 직조한 생활양식에 길들여져 풍요로움만을 삶의 최우선 좌표로 삼는 맹목성은 화근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돌출된 우리 민낯은 탐욕스럽고 편협하다. 따라서 지젝이 보기에 빨리 끝내야 할 것은 전염병이 아니다. 일상과 물욕에 중독되어 생명조차 경시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다. 생식능력이 없기 때문에 생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생물학적 유사체가 무슨 잘못이 있겠나. 오직 주어진 운명대로 움직이고 증식할 뿐인 바이러스의 진중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아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정종윤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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