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박영자 씨의 시아버지 故 정규선

30여년 전 정규선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30여년 전 정규선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태어남(生)이란 어디에서 죽음(死)이란 어디에로
오감과 있고 없음 모두가 자취없네

그다지도 잊지 못할 집 생각 어이하고
청산에 홀로 누워 무슨 생각 그러는가

애정에 한을 느껴 미련에 잠겼는가
빈산중 끌새 울음 어이 그리 구슬프냐

전생에 주린 정한 이 울음에 잠겼는가
한생을 같이살다 홀로 감이 슬퍼워라 "

유품을 정리하다 나온 돌아가신 시아버지 글이다.
찢어진 노트에 메모해 놓은 쪽지글을 읽는 순간 감동의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연가'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외로웠고 별로 살갑지 않던 아버님이었기에 말이다.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슴골을 파고 내려가는 이 뜨거움은 무엇인지?
내가 왜 이러지! 생각을 수십년 거슬러 내 철없던 며느리 적으로 돌아간다.

아버님은 고향에서 자전거 하나 훔쳐나와 만주와 서울을 오가며 자수성가 하셨다.
성리학과 다산학을 연구하시며 유림에서도 인정받고 사업에도 성공한 분이셨다.

30여년 전 정규선(오른쪽)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30여년 전 정규선(오른쪽)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그런 멋진 시아버님 아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신혼초에는 한복에 올림머리를 하고 우아한 새댁생활을 했다.
어머님과 나는 공장 안채에서 안방 마님으로서의 전통과예절 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외출도 거의 하지않고 살았다.
밥상머리에서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서 들어야하는 교육? 잔소리?등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때는 고된 시집살이로 느껴져 많이 울었다.
'하늘에 부끄럼없는 사람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개,돼지같은 인륜을 저버리는 금수가 되면 안 된다고...

별명이 중국대사일 정도로 근검절약도 심해서 밥풀 하나 버리지 않고 이면지 사용은 기본으로 몸소 실천하신다. 심지어 당신 옷이 헤지면 남편이 받아 입는다.
자손 욕심 많은 아버님은 남매를 둔 나에게 철마다 보약과 한약을 먹이면서 은근히 기대를 했다. 내 나이 50이 다 되도록 며느리 건강을 챙기셨다. 포기를 했는지 "애미 너는 60살 넘으면 내 얘기 할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하게 살 거다' 라고 하셨다.
요즘 70중반이 넘은 나는 아버님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산다. 사회활동을 왕성히 하고 있고 아직은 별 이상없이 기자, 스마트폰 강사, 동영상 유투버, 사진작가로서 부끄럼없이 노후를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아버님 덕분이다.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던 며느리가 이렇게 바깥에서 사는 것 보면 이해를 해주실지 송구스럽긴 하다.

윤달이 있어서 흩어진 산소 모두 모았는데 이어진 장마와 태풍에 혹시 상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추석 전에 아버님 산소가 잘 있는지 꼭 찾아봬야겠다.

아버님!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하는 것 보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던 손자도 50턱밑에 와 있고 저 역시 3년만 더 살면 아버님 돌아가신 나이가 됩니다.
제 남편 윤이가 마지막까지 부르던 그 이름 아부지~! 어메~!

아버님 깊은 사랑 생각할수록 고맙습니다.
아버님의 큰 그늘이 그립습니다.
아버님!! 많이 많이 보고싶습니다 .
그리고 사랑합니다.

맏며느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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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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