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3월. 이른 아침부터 날 선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응급 환자 관련 전화인가 싶어 바로 받았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는 다급했다. "급해서 실례를 무릎 쓰고 전화했습니다. 혹시, 간호사가 볼 수 있는 에크모 매뉴얼이 있으시면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타지역에서 코로나19 전담 동산병원에 파견을 온 중환자실 간호사였다. "알겠습니다"고 하고 얼른 컴퓨터를 열어 심혈관 중환자실 간호사 교육용 파일을 찾으면서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감염병 유행에 이렇게 준비가 안되어 있었나?"
에크모는 체외순환장치로 심장마비나 심한 호흡부전 환자에서 심장과 폐를 대신하여 산소공급과 혈액순환을 담당하는 필수적인 기기다. 그 원리를 이해하고 환자를 보기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수련이 필요하다. 자원봉사 형식으로 대구에 모인 연합군과 같은 의료인들이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에크모를 해야 할 정도의 중환자들은 대개 대학병원으로 이송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학병원에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일반환자만 치료하던 2차 병원에서 급하게 환자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대비해야 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
학생 때 진료봉사 동아리에서 고혈압 사업을 하면서 바라본 지역사회 의료서비스 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우후죽순 내과의원은 많았지만, 각종 만성질환을 짊어 진 채 최소한의 의료보장도 받지 못한 환자도 부지기 수였다. 같은 지역내에서도 이렇게 의료서비스 이용의 격차가 심한데 도시와 농촌, 서울과 지방의 불균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19년 한국 치료가능 사망률 통계를 보면 서울시 강남구가 인구 10만명당 29.6명인데 비해 경북 영양군은 107.8명이었다. 즉 치료했으면 살 수 있었던 환자가 영양군이 강남구에 비해 3.64배 높다는 말이다.
이런 취약한 공공의료와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날 만성적인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이 폐원 되었을 때도, 대구지역 공공의료를 담당하던 적십자병원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을 때도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코로나 대유행이 죽어가던 공공의료 강화의 꺼진 불씨를 되살리게 했다.
대구경북지역에서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원들은 규모도 작고 인력, 시설, 장비의 부족으로 중환자를 치료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때문에 지난 코로나 유행 때 수천명의 환자가 입원을 하지 못했고, 일부는 입원 대기중에 사망할 때 공공의료의 한계는 극에 달했다. 천신만고 끝에 민간병원을 비워 병실을 마련해서 사태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중환자 치료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여 치료가능 사망률은 증가했다.
현재, 의정 갈등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정부·여당 모두 공공의료 강화의 필요성과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 해소라는 의제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이제 산고 끝에 논의의 장이 열렸다. 이번 기회에 정부·여당은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에 임하고 의사단체는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공공의료 강화와 의료서비스의 지역불균형 해소라는 난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