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왕산 허위, 신라불교 초전지 그리고 구미
지난 주말, 경북 구미에선 두 가지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유공자인 왕산 허위(1855~1908) 선생의 순국 제115주기를 맞아 구미시가 해외에 사는 후손을 초청해 향사(享祀)를 올린 것이고, 또 하나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 땅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인 구미와 전남 영광군 불자들이 영호남 화합을 위해 1천60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구미시 임은동 출생인 왕산 선생은 전국 의병장과 연합한 13도 창의군을 결성, 1908년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일본 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한 '서울진공작전'을 펼쳤다. 비록 작전은 실패했으나 일제의 심장부를 겨눈 의거는 독립운동사의 큰 획으로 남아 있다. 선생은 그해 10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제1호 사형수로 순국했다. 선생의 가문은 3대(代)에 걸쳐 항일운동에 헌신해 모두 9분이 서훈(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아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과 함께 독립운동 3대 명문가로 꼽힌다. 일제에 항거한 여느 독립운동가 가문처럼 왕산의 후손 또한 러시아, 키르기스스탄 등에 흩어져 있다. 이번에 구미시는 해외 거주 후손 등 13명을 3박 4일간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초청했다. 발전한 구미의 산업현장을 돌아보고 병원 검진을 통해 건강도 챙기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히 김장호 구미시장은 환영 만찬을 마련해 지역의 인사들과 함께 왕산 선생의 구국 헌신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후손들은 선생에 대한 예우에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증손녀 허미라(러시아 거주) 씨는 직접 그린 왕산 초상화 원본을 기증해 마음을 주고받았다. 구미시 도개면 신라불교 초전지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가 이어졌다. 1천600년 전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법을 처음으로 전한 곳이다. 이날 백제불교 도래지인 영광군 주민 120여 명이 구미로 와서 두 지역 불교 성지(聖地) 주민들 간에 처음으로 자매결연을 했다. 영남과 호남 사이에 존재하는 정파성을 민간 부문에서 희석시킬 수 있는 좋은 시도다. 또한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축이 된 불교계 행사지만, 구미로선 신라불교 초전지에 대한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된 자리라고 생각한다. 백제불교 최초 사찰인 불갑사 주지 만당 스님은 "구미 초전지에 와 보니 뭔가 허전하다"며 "법성포는 성역화 사업 이후 전국적인 불교 성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구미 지역 불교계와 정치권이 합심해 신라불교 초전지 성역화를 추진한다면 전국의 많은 불자와 관광객들이 성지순례와 관광으로 구미시를 찾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법회에 참석한 영광군 주민은 백제불교 도래지 성역화 이후 법성포 굴비 판매량이 17배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신라불교 초전지에 대해서는 구미 사람들도 모르는 이가 많다. 종교를 떠나 지역의 대표성 있는 유·무형 자산을 적극 알리는 것은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구미는 산업도시 이미지가 워낙 강한 터라, 구미에 서려진 정신 문화적 가치가 가려져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길재와 그의 제자들이 학맥을 계승한 조선 성리학, 유교문화의 본향(本鄕)이 구미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조국 근대화의 산실 또한 구미다. 불교·유교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고양하고, 지역 위인을 선양하는 것은 내 고장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기는 길이다. 아울러 기업들이 구미 투자를 하게끔 정주 여건을 갖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2023-10-24 20:09:35
[구미시대, 기업이 뛴다] 세계 점유율 1위 '영도벨벳'…산업용 첨단 소재기업으로 변신
1960년대까지 '벨벳'은 부의 상징이었다. 당시 '비로드'라 불렸던 옷감은 혼수품으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선 생산기술이 없어 유통 물량의 대부분은 독일, 일본 밀수품이었다. 영도벨벳 류병선 창업자는 남편 고(故) 이원화 회장과 함께 1968년 벨벳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1960년 류 대표 부부는 처음 대구에서 직기 4대를 빌려 고무신에 들어가는 방한용 털을 짜는 사업을 했다. 그러다 눈을 돌린 게 벨벳 섬유였다. 독일제 원단을 가져다 놓고, 1년여 밤낮으로 직기에 붙어 앉아 연구해서 원단 짜는 방법을 알아냈다. 벨벳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섬유기업 해외로 눈 돌릴 때 구미에 대규모 투자 벨벳은 털이 촘촘하게 박힌 섬유 조직으로 의류·소파 등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 값비싼 해외 제품을 대체하며 국내 시장을 석권했고, 1975년부터는 수출도 했다. 사업은 승승장구였다. 1988년 1천만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1990년엔 물로 세탁해도 모가 눕지 않는 마이크로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1990년대 들어 대구의 섬유기업 70% 이상이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때 영도벨벳은 구미 국가산업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며 회사는 위기에 처했다. 달러 환율이 3배 가까이 치솟아 직기 리스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결과였다. 류 대표 부부는 끝까지 부도를 내지 않고 집까지 담보로 잡히며 악착같이 노력한 끝에 2004년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이후 영도벨벳은 사업 궤도를 찾아 창업 40여 년 만인 2001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뒤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 3천만달러 수출탑, 2019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세계시장 점유율 1위…첨단 소재기업으로 변신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 영도벨벳 전 제품은 90% 이상 세계 124개국에 수출한다. 어느 공정도 하청을 주지 않고 자체 보유한 연사-제직-염색에 이르는 일괄 공정은 경쟁사가 모방할 수 없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특히 제직 전 원사를 특수 가공해 탄력성을 가하는 기술과 시간 조절로 염색하는 기술은 오랜 경험에서 축적된 노하우다. 이제 영도벨벳은 1등 섬유 기업에서 첨단 소재 기업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산업용 벨벳 개발에 나서 2006년 'LCD(액정표시장치) 러빙포' 국산화에 성공했다. 러빙포는 LCD의 액정 분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해주는 핵심 섬유 소재다. 2011년 LG디스플레이가 애플에 공급한 아이패드2 LCD 패널에 처음 사용됐고, 이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현재 영도벨벳 매출의 45%가 러빙포에서 나온다. 영도벨벳은 고밀도 LCD 러빙포 기술을 기반으로 미래 전기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환경필터 벨벳, 리튬이온전지 음극활물질 벨벳, 탄성 복합 강판 벨벳 등을 개발해서 2030년 첨단소재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류병선 회장은 "밀수를 통해 (벨벳이) 들어오던 나라가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됐다"면서 "벨벳 분야에선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각인되도록 100년 이상 기업으로 뿌리내리도록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도벨벳 구미공장은 '벨벳'이라는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식당, 휴게실, 화장실 등 회사 공간에 벨벳으로 인테리어를 구성했고, 벨벳 문화복합공간 '영도다움갤러리'와 산업복합공간 '비로드(Be road) 1960'을 열었다. 비로드 1960은 구미지역 산업투어 코스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2023-10-11 11:26:27
[시각과 전망] 신공항 화물터미널, 자중지란은 안 된다
대구경북신공항에 들어설 화물터미널 입지를 놓고 대구와 경북 간에 갈등이 커질 조짐을 보여 우려스럽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은 "공항 물류단지가 예정된 의성에 화물터미널이 배치돼야 한다"며 "대구시는 지금까지 의성군과 제대로 된 협의 없이 일방적 시설 배치를 하고 발표하면서 상호 신뢰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대구시가 "화물터미널은 군위에 두고 나머지 연관된 항공물류시설은 의성군에 집중하는 것이 공동합의문의 기본 원칙"이라는 입장 발표에 따른 대응이다. 급기야 의성군은 "화물터미널을 의성에 배치하지 않으면 공항 추진은 어렵다"며 초강수로 맞서는 상황이다. 2020년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작성한 공동합의문에는 항공물류·항공정비산업단지를 의성군에 조성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의성군은 항공화물을 규격화된 용기에 담는 작업을 하는 화물터미널이 항공물류단지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고, 대구시는 당초 합의문에 화물터미널이라는 용어가 명시되지 않았고 화물터미널은 민항시설이 있는 군위에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화물터미널 입지 논란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김장호 구미시장의 설전(舌戰)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군위(대구)와 의성(경북) 문제에 말을 아껴 온 이 지사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의성 편을 들었다. 그는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행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인천공항을 살펴보면서 항공물류단지와 화물터미널은 인접해 있어야 효율적이라고 피력한 것. 다음 날 구미시장도 거들었다. 경북도 신공항추진TF 반장을 했던 당시를 되살리며 "민간공항 터미널은 군위에, 항공물류 관련 시설은 의성에 균형적으로 안배하는 것이 합의문의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여객, 화물터미널 모두를 대구(군위)에 두겠다는 것은 이에 벗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홍 시장은 "구미시장이 되자마자 상수원 이전 협약을 깨 버리더니 이번엔 신공항 물류단지를 구미에 설치하겠다고 하면서 의성을 자극하고 분탕질한다"며 "분별없이 끼어들지 말고 그 입 좀 닫아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에 김 시장도 "어느 일방이 독식하겠다는 것은 신공항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대구경북 전체 공동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대구시장과 구미시장의 이러한 언쟁은 지난해 취수원 이전에 대한 '구미 패싱'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미는 신공항과의 직선거리가 10㎞ 정도로 활주로 방향에 의해 구미 해평면, 산동읍 쪽엔 군용 항공기 소음 피해 문제도 잠복되어 있다. 자칫 대구경북 단체장들 간의 감정적 갈등이 격화된다면 이면의 문제들까지 수면 위로 돌출될 수 있다. 신공항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대구경북의 자중지란(自中之亂)은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지방공항을 아직도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여기는 수도권 일극주의자들에게 빌미만 줄 뿐이다. 15년 만에 여야 합의로 뜻을 모은 '달빛철도 특별법'조차 돈 낭비라고 치부하지 않던가. 수도권 GTX(광역 급행철도망)는 예타 면제를 추진하면서 영호남 상생 균형발전을 경제성 하나로만 흔들어 댄다. 대구경북 100년 미래가 걸린 신공항을 잘 만들어야 한다. 작금의 갈등을 놓고 지역 경제계 등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대구와 구미를 비롯한 경북은 불가분의 공동체 관계임이 분명하다. 부디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큰 그림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2023-09-26 18: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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