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었다. 그것은. 헛된 기대와 희망의 꿈. 집권 여당의 한 고위 인사가 TV에 나와 연설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자는 누구나 대한민국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나는 선한 대한민국, 흰 옷을 입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요, 악한 대한민국은 당신네 몫'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토마스 만의 1945년 5월 미 의회 강연문 '독일과 독일인'의 핵심 부분에 '독일' 대신 '대한민국'이 들어간 것이었다.
지난 광복절 광복회장이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고, 안익태는 민족반역자였다. 두 사람의 묘는 파묘하고, 애국가는 폐기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념사를 했다고 한다. 아무리 막말과 궤변이 창궐하는 나라기로서니, 이런 식으로 역사를 난도질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가 흉중에 품은 메시지는 분명 이런 것이었을 게다. "나는 선한 '우리나라', 정의로운 '우리나라'다. 악한 대한민국은 당신네가 알아서 해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했던가, 어쨌거나 필자로서는 한동안 잊고 있던 명문을 다시 읽게 해 준 그 광복회장에게 감사해야겠다.
만이 '20세기 가장 독일적인 작가'로 꼽히는 것은 나치 파시즘에 대한 단호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괴테로 대표되는 독일 인문주의의 적자로서 독일사의 긍정적·부정적 징후를 함께 읽었던 그는 인류의 화해와 통합을 모색한 보기 드문 독일 작가였다. 나치라는 악마와 계약을 체결한 조국의 사악한 면까지 자기 것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는 내면의 명령에 그는 누구보다도 충실했다. "독일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악한 독일과 선한 독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독일만이 있다는 것, 악한 독일은 길을 잘못 든, 불행과 죄와 멸망 속의 선한 독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국민 편가르기에 대한 준엄한 경고였다.
만의 이 강연문에서 필자는 불현듯 '식민지의 회색지대'(윤해동, 2003)를 떠올린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체제순응자만이, 혹은 체제반항자만이 있지 않았다.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가 발원하는 지점이다. 오갈 데 없는 망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런 그들을 반일과 친일의 이분법으로 가를 수 있을까? 오히려 "피지배 민중들은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협력하고 저항하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당시 현실에 더 부합되는 설명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친일과 반일이 아닌 협력과 저항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식민지의 회색지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역사란 그것이 써지는 시대의 산물이므로, 역사 속의 인물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비스마르크가 그랬고, 앞서 언젠가 살펴본 하이네가 그랬다.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냉혹한 독선가, 하이네는 19세기 독일 최고 시인이자 유대계 반체제 지식인이라는 양극을 오간다. 그러나 영웅의 전당 '발할라' 기념관에 안치된 두 사람의 흉상은 '파묘' 걱정 없이 나란히 서서 독일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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