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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참나무와 철 -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덕형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파우스트적'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괴테 '파우스트'는 첫 장면부터 파우스트적이다. "아! 나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철저히 연구했건만,/ 여전히 가련한 바보!"라고 자탄하며 파우스트는 독배를 들어 자살을 기도한다. "세계를/ 통괄하는 힘과/ 근원을 통찰"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생 독문학 하나만도 벅찬 필자야말로 '가련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독일은 좀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자족한다.

지독파(知獨派)로 자처하는 필자가 보기에 유럽적 보편 가치에 충실한 독일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다. 유럽적 보편 가치라면 '공동체적 복지에 기반을 둔 삶의 질'('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이라 하겠는데, 독일은 그것을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정책메커니즘을 통해 구현한다. 그러나 삶의 질 증진에 있어 경제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독일인의 삶의 태도에 주목하는 이유다.

어느 나라나 상징목이 있다. 독일의 경우 비교적 우리 귀에 익은 보리수나 전나무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정작 독일을 대표하는 나무는 참나무다. 그림 동화에서 보듯 숲은 독일인의 정체성과 운명의 요람이었고, 숲의 으뜸은 참나무였다. 학명 '쿠에르쿠스'가 의미하는 대로 '진짜 나무'인 참나무에 대해 독일인이 가지는 애착의 역사적 연원은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또한 철(鐵)이 검소함과 견고함이라는 독일적 미덕을 상징하게 된 역사철학적 배경과 궤를 같이 한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처했을 때, 참나무는 철과 함께 민족의식 고양의 최정점에 선다. 1813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왕의 명으로 독일 최고훈장이 제정되었는데, 바로 '철십자훈장'이었다. 우리의 'IMF 금모으기 운동'과 비슷한 상황에서 왕실과 귀족들이 솔선수범했지만, 각종 동상과 목걸이 등 장신구는 물론 국가의 최고훈장까지 귀금속이 아닌 철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철십자훈장에 새겨진 문양이 하필이면 참나무 잎이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참나무와 철이 검약한 독일인들의 삶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와서도 참나무는 국민나무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데, 전후 독일(서독) 마르크 화 동전(1페니히)에 참나무 잎이 들어간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흔히 '생활은 단순하게, 생각은 고귀하게'라고 구두선처럼 이야기한다. 지독파인 필자가 관찰한 독일인들의 일상 삶은 단순함과 소박함 그 자체였다. 이름난 유원지에 왜 흔해빠진 식당 하나 제대로 없는지, 왜 기껏 담소하며 산책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생활이 단순하다고 생각까지 그럴 것이라고 예단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인생사란 비울수록 충만하고 채울수록 공허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우리는 적어도 인식의 지평에서는 잘 느끼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차제에 필요 이상으로 시끌벅적한 우리네 삶의 패턴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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