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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환의 같이&따로] 찬스 사회 대 공정 사회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금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중간고사가 한창이다. 비대면 수업으로 조용했던 교정이 시험을 치러 온 학생들로 모처럼 활기가 느껴진다. 비대면 수업이라 해도 성적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시험과 같은 과정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거리두기가 필요하고,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시험을 보려면 수강 인원의 4배가 넘는 공간이 필요한 만큼 코로나 시대에 시험을 통한 성적의 공정성 확보도 쉽지 않다.

학기말이 되면 시험성적과 과제, 수업 참여, 발표 등 다양한 평가 기준을 활용하여 학생의 성적을 부여한다. 과목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상대평가제에 의해 A, B, C~E 학점이 비율에 따라 배분된다. 교수 입장에서 성적을 처리하고 성적 공개 일자가 되면 약간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생들의 성적에 대한 컴플레인(불평) 때문이다.

가끔 성적을 다시 한번 재고해 달라고 읍소(?)하는 애교 섞인 컴플레인도 있지만, 공격적인 컴플레인도 있다. 경험상 B학점을 받은 학생들의 학점에 대한 문의가 제일 많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과제도 다 하고, 출석도 열심히 했고, 시험도 그리 못 본것 같지 않은데 자신의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교수에게 자신의 성적에 대해 항의를 한다.

사실 A-를 받은 학생과 B+를 받은 학생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규정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비율에 의해서 배분되고, 사소한 차이로 A와 B가 결정된다. 대부분의 학생은 학생의 점수와 전체 평균 점수, 부족한 점을 설명해 주면 수긍을 한다. 결과가 다소 불만족스럽다 해도 과정상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일들이 과정과 결과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믿음이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과정도, 결과도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인 엄마, 아빠를 둔 자녀들이 엄마 찬스, 아빠 찬스를 활용해 명문 대학에도 가고, 공기업에 특별 채용되기도 하고, 국회의원도 물려받고 한다. 그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그러한 자리에 갔을까? 지난달 고용통계에 의하면, 전년 대비 취업자 수가 40만 명 감소했고 특히 20, 30대 실업률이 가장 높았다.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은 활용할 수 있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없다.

얼마 전, 40대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택배노동자 8명이 사망했다. 추석 전, 택배노동자조합은 엄청난 양의 추석 택배 물량만이라도 분류할 수 있는 분류 인원 배정을 요구하며 분류 작업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와 업계는 긴급간담회까지 진행하면서 추가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약속한 대로 추가 인력은 투입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택배노동자들은 하루에 6시간 이상의 물품 분류 작업을 하고 나서야 배송작업을 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산재보험료를 아끼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제외 신청서를 무더기로 대필하였다는 의혹까지 국감에서 제기되었다. 다른 보험과 달리 산재보험은 100% 고용주의 부담이기 때문이다.

한 해에 2천4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하루에 6, 7명이 사망하는 셈이다. 2년 전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달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했다. 둘 다 안전 장비나 조치 없이 위험한 일을 비정규직과 하청업체에 외주화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이러한 일들을 막고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으나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추석 전날,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나훈아의 '테스형'이라는 노래가 장안의 화제다. 찬스를 활용할 수 없는 오로지 세상의 공정성 기준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그의 노랫말이 공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때로는 세상 일이 공정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이 찬스가 아닌 공정이라는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경험과 믿음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테스형이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려서 겸손해져라, 젊어서 온화해져라. 장년에 공정해져라, 늙어서는 신중해져라. 지금의 정치인들이 테스형의 말을 명심했으면 한다.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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