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21일 첫눈이 내렸다. 시내 도로에는 적설(積雪)이 되지 않았지만 고궁과 톈안먼광장 등 도심 곳곳을 찾은 베이징 시민들은 주말인 이날 오전 내내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겼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지친 일상에 작은 위안이 됐을 것이다.
눈(雪) 귀한 베이징에서는 귀한 선물이다. 하루 전 베이징 교외에 위치한 구베이쉐이쩐(古北水鎭)이라는 요즘 인기 있는 '핫 플레이스'에도 첫눈이 소복이 내려 쌓였다. 이름난 만리장성 명소 중 한 곳인 '스마타이 장성'(司馬台長城)으로도 오를 수 있는 '수향'(水鄕)에 눈 내린 풍경은 우리가 코로나 시대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줄 정도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베이징에 눈이 오면, 평소에도 교통정체가 극심한 베이징 시내는 아예 교통지옥으로 변한다. 일 년에 두세 번 눈이 내리는 베이징인지라, 택시 등의 대중교통은 월동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운행한다. 그래서 강설 예보에도 불구하고 눈이 오면 꼼짝없이 교통지옥을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최악의 첫눈은 2000년이었을 것이다. 그해 첫눈은 '첫눈'답지 않게 폭설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싸락눈으로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오후 들어 도로에 쌓이기 시작할 정도의 함박눈으로 변했다. 퇴근 시간이 와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베이징 시내는 거대한 주차장처럼 교통지옥으로 변했다. 눈길에 뒤엉킨 차량들은 거북이운행을 하다가 한 걸음도 가지 못했다. 당시 베이징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지도를 구해 발이 빠지는 눈길을 두 시간 걸어서 저녁 약속 장소에 늦게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길이야 막히거나 말거나, 첫눈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도,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아닐지라도 첫눈은 겨울이 선사하는 특별한 이벤트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눈이 오자 주말을 맞아 자금성과 이화원 등의 시내 관광지를 찾은 베이징 시민들은 눈 내리는 풍경을 '웨이보'(微博)등의 중국 SNS에 올렸다.
웨이보와 바이두(百度) 등에서 첫눈 내린 베이징 시내 풍경을 유심히 보다가 중국은 이미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말을 즐기는 베이징 시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이전의 일상 모습인 듯 착각했다. 그러나 분명 첫눈 내린 21일의 베이징이었다.

전 세계가 연일 최다 확진자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지 중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중국은 세계로 열린 문(門)에는 빗장을 걸었다. 전 세계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은 봉쇄됐다. 베이징에 가려면 인근의 톈진(天津)이나 다른 성(省)으로 가서 2주간의 격리 후에 무감염 상태가 확인되면 베이징으로 들어갈 수 있게 이중삼중의 차단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22일 발표된 중국의 신규 확진 16명 중 네이멍구(内蒙古)의 2명 등 3명을 제외한 13명이 해외 유입 사례다. 쪽문만 열어 놓고 해외에서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한 결과, 중국은 세계 최고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청정국'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우한폐렴'이 발생한 초기, 바이러스 정보를 방치하고 경계령을 내리지도 않았고 오히려 은폐하다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중국의 방역 당국이었다. 14억 명의 대이동이 시작된 춘절(春節)에 1천만 명이 사는 우한(武漢)을 전격 봉쇄한 것이 중국 방역 당국의 첫 조치였다.
우리의 'K-방역'이라는 방역 시스템은 중국식 봉쇄와 차단 방역의 한국식 적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이동을 통해서 사람 간의 접촉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봉쇄와 차단 외에 다른 예방책이 없다.
'우한폐렴'이 '코로나19'(COVID-19)로 명칭이 정립되는 과정을 거쳐 '팬데믹'으로 급속하게 진화하는 과정을 함께한 우리로서는 중국의 일상 회복이 낯설면서도 놀랍고 부럽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최근 언론에 공개된 주요 행사에 참석하면서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한 시민도 있지만 중국의 TV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거리낌이 없다. 우리는 '양치기 소년' 같은 방역 당국의 거리두기 단계 오르내리기에서 벗어나, 언제쯤 일상(日常)을 회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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