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을 걷다, 먹다] 11. 안동국밥, 옥야식당

안동 옥야식당
안동 옥야식당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11. 안동국밥

안동 국밥
안동 국밥

◆국밥시즌

국밥의 계절이다.

국밥이야 사계절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지만 유독 찬바람이 옆구리를 쑤시기 시작하는 찬바람 불어오는 한겨울이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더욱 그리워진다.

밥과 국이 한데 어우러진 '국밥'은 우리 음식문화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된장국이나 해장으로 자주 먹는 돼지국밥이나 우거지해장국, 설렁탕이나 곰탕 어느 것 하나 보석같은 국밥이지만 국밥의 지존은 누가 뭐래도 장터국밥이다.

대형마트세상이 펼쳐지기 전만 해도 전국 어디서나 닷새마다 '5일장'이 섰다. 장이 서면 동이 트기도 전에 장터 한 귀퉁이 자리 잡고 큼지막한 가마솥이나 양은솥 걸어 장작불이나 가스불 켜서 한나절 끓여내던 국밥 한 그릇. 꼭두새벽부터 꽃단장하고 장보러 나온 '장꾼'과 '장사꾼'들의 허기를 달래준 장터국밥.

장터국밥은 순대와 선지 혹은 돼지국밥이거나 우거지와 대파, 무를 듬뿍 넣어 얼얼하게 끓여내는 쇠고기국밥으로 나뉜다. 사골과 소 잡뼈를 기본 베이스로 우려내는 '곰탕'이나 설렁탕은 어쩌면 국밥계의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 국밥이 최고다. 우리 앞세대가 겪은 6.25 전쟁통에 피란길에 올라 생존을 위해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부산 부전역 인근에 자리 잡은 이름난 돼지국밥집들은 그런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눈물 젖은 국밥이다.

부산돼지국밥이 얼마나 맛있으면 '힙합' 가요로도 만들어졌을까. 노래만 듣고 있어도 부산에 가서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는 유혹을 당해서 입에 침이 고인다.

가사를 들어보면 돼지국밥을 먹으러 부산에 같이 가자며 '아는 오빠'가 '아는 여동생'에게 유혹하는 내용이다.

클로버의 돼지국밥 앨범
클로버의 돼지국밥 앨범

"나 오늘밤 고백할게... 너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 부산으로 떠나자.

손만 잡고 잘 꺼다. 딴 생각은 말아라.

Órale Senorita, 막 잔으로 Margarita.

마시고 떠나자. 나와 단 둘이서, 조금 이따...

부를까, 대리기사...? 마지막 기차...? 뭐로 가든 가자. 가스나 와 팅기나...?

어머! 이 오빠, 왜 이렇게 질척거려...? 어서 마시던 김치국은 뱉어버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뭔데...? 왜, 지 혼자 부풀어 있는 건데...?

니도 접때 돼지국밥 묵으러 가고 싶다메...?

맞다, 니 친구 집도 부산 광안리라메...?

이거 뭐, 그냥 살아있네! (살아있네)

지금 퍼뜩 가믄 되는데 또 뭐가 걱정인데...? (follow me)

국밥 먹고 싶댔지 누가 부산까지 간댔어...? (아 쫌!) 혼자 신이 났네, 신이 났어.

사람이 왜 이렇게 빡세...? 커피 마시러 콜롬비아라도 갈 기세..." (가요 돼지국밥 중)

돼지국밥과 선지국밥 혹은 순대국밥은 가장 대중적인 국밥이다. 전주콩나물국밥도 국밥계에서는 일가를 이뤘다. '삼백집'과 '현대옥'이라는 두 전주콩나물국밥 종가는 식은 밥을 넣어서 토렴해서 내는 (전주)남부시장식인가 여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

시장 장터국밥 옥야식당은 장터국밥의 맥을 잇는다. 쇠고기국밥에 선지를 넣었다.그래서 육개장처럼 얼큰하지 않고 시원한 맛을 낸다.
시장 장터국밥 옥야식당은 장터국밥의 맥을 잇는다. 쇠고기국밥에 선지를 넣었다.그래서 육개장처럼 얼큰하지 않고 시원한 맛을 낸다.

장터국밥은 경상도가 단연 원조다. 장터국밥 중에서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에서는 육개장 베이스가 주류였다. 지금도 안동이나 경주, 상주, 영천, 의성 등은 한우가 유명하지만 예전부터 이곳에서는 우(牛)시장을 중심으로 장터국밥이 발달했다. 그러니 당연히 장터국밥은 양지와 사태를 푹 삶아내고 소뼈를 우려낸 국물에 대파와 우거지를 넣어 끓여내는 육개장 국밥이나 한우선지를 넣은 선지국밥이 많았다. 좋은 소를 사려는 '소장수'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고 우시장 한켠의 식당에서는 온 종일 국밥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요즘은 대구에 다양한 먹거리들이 많지만 예전에 대구의 대표음식으로 '따로국밥'이 꼽혔다. 흔히 먹는 장터국밥이 식은 밥을 넣고 토렴해서 내는 식이었다면 국과 밥을 따로 주는 따로국밥은 조금 색다르고 고급스럽다는 의미였을 게다. 그래서 외지사람들은 국밥 한 그릇에 공기밥이 무슨 대표음식이냐고 대구음식문화를 깔보곤 했다. 그래도 대구 따로국밥은 국밥계에서는 꽤 알아준다. 이 따로국밥이 경상도식 장터국밥의 원형이다. 쇠고기국밥을 베이스로 해서 한우선지를 넣어 한그릇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장터국밥에서 온 것이다.

경상북도 한우경진대회에 출품된 한우들
경상북도 한우경진대회에 출품된 한우들

◆옥야식당

안동은 '안동갈비'라는 먹거리를 자랑하듯이 '안동한우'하나라도 이름난 고장이다.

서울에선 안동국시 하나로 음식기업 일가를 이룬 한 국숫집에서 '안동국밥'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쇠고기국밥이 있다. 안동에서는 그건 그냥 쇠고기국밥이라고 부른다.

안동 장터국밥은 국밥 한 그릇으로 50년이 넘은 '옥야식당'이 지키고 있다. 옥야식당은 안동에서 가장 큰 중앙 신시장 골목에 있다. 구시장이 안동찜닭 골목으로 유명하다면, 신시장에서는 단연 이 국밥집이 돋보인다. 안동 5일장도 이 신시장을 중심으로 2,7일 마다 열린다. 장날마다 식당에는 인근의 와룡, 예안, 도산, 남후, 북후 등지에서 장보러 나오신 어르신들이 북적거린다. 장터국밥 한 그릇 먹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장꾼'들의 화룡점정 일정이다.

선지쇠고기국밥
선지쇠고기국밥

옥야식당은 장꾼들의 애환이 서린 장터국밥의 맥을 잇는다.

식당은 신시장에 들어서서 문어를 삶아내고, 돼지국밥을 팔고 보신탕도 끓여내는 그 골목 중간 어디쯤에 있다. 식당 입구에서 대파를 다듬는 풍경을 만나면 그곳이다. 두 서너 개의 큼지막한 양은솥에서는 하루 종일 국밥을 끓여내고 손님이 올 때마다 허연 김이 무럭무럭 솟아난다.

식당으로 들어서면 작은 탁자에 앉아서 삶아낸 양지를 찢고, 사태를 편육처럼 얇게 써는 '시영할매'를 만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사태가 터지자 연로하신 '할매'는 가게에 나오지 않는다.

옥야식당 국밥은 육개장에 선지를 넣은 '선지육개장'이다. 대구 따로국밥과 비슷한 정통 장터국밥이다. 그러나 국밥 한 그릇에 들어간 쇠고기가 생각보다 푸짐하다. 요즘 시장인심이 그렇게 후하지 않더라도 여기선 옛날 장터인심을 느낀다.

국밥은 뚝배기 바닥에 사태와 양지를 깔고 잘 익은 대파 등 건더기를 넣은 후 선지까지 올리고 두세 번 토렴해서 내놓는다. 그래선가 돼지국밥처럼 펄펄 끊는 정도가 아니라 뜨뜻 미지근한 편이다. 반찬은 단촐하다. 겉절이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절인 고추가 전부다. 국밥 한 그릇에 이 이상의 반찬이 더 필요하지는 않다.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따로 내준다. 다진 마늘 적당히 넣고 휘휘 저어 알싸한 마늘 맛을 첨가하면 제대로 된 옥야식당 선지쇠고기국밥의 맛은 완성된다.

옥야식당에서는 절대로 술을 팔지도 않고 마실 수도 없다. 수십 년간 지켜 온 이 식당만의 철학이다. 술을 가지고 와서 마셔도 안된다. 그래서 간혹 음주를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지는 재미있는 풍경을 보기도 한다.

물론 맛을 느끼는 데는 개인차가 있다. 해장국으로 치면 경기도의 김포해장국도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

안동에는 육개장식 쇠고기국밥 식당이나 돼지국밥, 혹은 설렁탕을 잘하는 식당들도 꽤 있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면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변치 않는 맛을 제공하는 오래된 식당은 많지 않다. 안동세무서 옆에 있는 옛마을 식당 설렁탕도 '가성비' 로는 손에 꼽을 수 있는 착한 국밥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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