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오랜 친구 로이 부부가 보내준 종소리

19세기 독일 마이센 KPM 도자기 여인 종, 높이 18cm
19세기 독일 마이센 KPM 도자기 여인 종, 높이 18cm
이재태 경북대 의대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교수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신희상) 내가 특별히 현명한 건 아니나 종(鐘)을 수집하며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로부터 인류의 삶과 역사, 종교, 문화, 예술 분야에서 많이 배웠다.

캐나다의 롭 로이(Rob Roy)는 나와 연배 차이가 있으나, 디지털 전자우편으로 교류하며 사귄 절친이다. 20여 년 전 판매를 위해 인터넷에 올린 그의 종에 반하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직도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매번 그가 보낸 소포를 받을 때는, 오랜 친구가 보내준 향기 나는 선물이 도착한 느낌이다. 그는 서양 문명이나 그들의 삶에 관한 나의 질문이 반복되어도 언제나 성심성의껏 답해준 진정한 스승이었다. 롭은 다방면에 해박했고, 80대의 나이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즐기는 천생 선생 타입이기도 하다. 어느 날 스코틀랜드의 영웅 '롭 로이'라는 청동 인물 종을 구했기에, 이분과 당신의 이름이 같은데 혹시 조상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프랑스 혈통이어서 그와는 무관하단다. 불어권 퀘벡에 살다가 오래전 영어권으로 이사왔고, 프랑스식 이름 '로베르 롸'도 영어식 '롭 로이'로 바꾸었다고 했다.

롭 로이(왼쪽)와 부인 샐리
롭 로이(왼쪽)와 부인 샐리

롭은 군 복무 중 대학에서 생물과 화학을 전공하고 화학교사로 살았다. 그는 해군병원 간호사였던 샐리를 만나 1967년 결혼했는데, 이들 부부의 종 수집 경력은 60년에 달한다. 샐리가 웨딩 벨을 수집한 것이 시작이었고, 결혼 후에는 두 사람이 같이 몰두한 것이다. 부부는 캐나다의 수집가 모임을 조직하고, 오랫동안 회원들을 위해 봉사했다. 부인은 도자기와 유리 종, 남편은 희귀한 종과 기계식 종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들은 수집품이 1천 개를 넘지 않게 조절하며 가끔은 판매를 했기에 그들의 수집품 일부는 멀리 나에게도 올 수 있었다.

그들의 최애장품을 물었더니, 19세기 독일 마이센 제작의 채색 도자기 인물 종 사진을 보내왔다. 부채와 거울을 들고 자태를 뽐내는 5인의 여성 종은 1832년 독일 관영도자기회사 표시가 된 명품이다.

우리는 소소한 일상도 교환한다. 롭은 금년 봄 대구의 코로나19 발생을 가장 먼저 걱정해 주었고, 캐나다인 오셔가 지도한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었다. 황우석 연구 부정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곤란한 질문도 했으나, 밤하늘의 월식을 관찰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가끔은 그의 병환 소식에 나의 소견을 적어 보내기도 하나, 대부분은 큰 도움을 주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는 수집을 하며 인생이 풍부해졌고, 선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오랫동안 이들의 친구여서 행복했고, 그들의 넉넉한 마음씨가 담긴 종소리를 음미하며 즐거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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